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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한 번 멈췄습니다. 멜렉이라는 남자가 자기 입으로 강도 행각을 털어놓는 장면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먼저 찾아가셨습니다. 더 초즌 시즌2 1화는 '잃은 양의 비유'를 그대로 눈앞에 펼쳐 보이는 에피소드였고, 제가 평소에 사람을 대하던 방식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멜렉 이야기가 유독 현실적으로 느껴진 이유
더 초즌(The Chosen)은 성경 속 인물들을 드라마 형식으로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여기서 '재구성'이란, 성경이 기록하지 않은 인물들의 감정과 대화를 창작진이 상상력으로 채워 넣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멜렉이라는 이름의 사마리아인도 성경에는 등장하지 않는 창작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인물이 너무 현실적이었습니다.
멜렉은 가뭄으로 일자리를 잃고, 딸의 갈비뼈가 드러날 만큼 굶주리던 끝에 강도짓을 선택했습니다. 피해자가 죽었을 수도 있다는 죄책감을 안고 다리마저 부러진 채 돌아온 사람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생계형 범죄자라고 불릴 만한 인물이죠.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사람이 낯설지 않다는 거였습니다. 실수 하나로 인생이 무너지는 사람은 2026년에도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제가 실제로 주목한 장면은 예수님이 멜렉에게 "그 유대인은 죽지 않았어"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이었습니다. 어떻게 아시냐는 멜렉의 질문에 "난 알아(I know)"라고만 하십니다. 이 짧은 대답이 극 중에서 신적 전지성(omniscience), 즉 하나님으로서 모든 것을 아시는 속성을 암시하는 방식으로 기능합니다. 쉽게 말해, 이 장면은 예수님이 단순히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게 아니라 실제로 알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 주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날 밤 멜렉의 다리가 낫습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드라마는 이 장면을 통해 원격 치유(healing at a distance)를 묘사합니다. 성경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등장하는데, 요한복음 4장에서 왕의 신하의 아들을 멀리서 고치신 기적이 그것입니다(출처: Bible Gateway, 요한복음 4:46-54). 드라마는 그 원리를 멜렉에게 적용한 셈입니다.
멜렉은 성경에 없는 창작 인물이지만, 생계형 범죄와 죄책감이라는 설정이 현실감을 높인다
예수님의 "난 알아"는 신적 전지성을 암시하는 극적 장치로 기능한다
그날 밤 멜렉의 다리가 낫는 장면은 요한복음의 원격 치유 기적과 맥락을 같이한다
드라마는 은혜의 따뜻함을 강조하지만, 예수님의 "회당으로 돌아가고 말씀을 전파하라"는 요청을 통해 변화의 방향성도 제시한다
요약: 멜렉 이야기는 창작 인물이지만, 죄책감과 회복이라는 주제를 통해 성경의 원격 치유 기적과 잃은 양 비유를 생생하게 구현한다.
정죄하는 쪽과 찾아가는 쪽, 나는 어디에 서 있었나
이 에피소드에서 제가 예상치 못하게 찔린 장면은 따로 있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자신들을 모욕한 사마리아인들에게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들을 태워 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을 꾸짖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저들이 자격이 없다고? 그렇다면 너희는?" 이 대사가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솔직히, 저도 비슷한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SNS에서 누군가의 실수를 보면 "저런 사람은 원래 저래"라고 단정 지을 때가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드라마 속 예수님의 논리는 달랐습니다. "자격 없음이 핵심이 아니라, 그게 바로 내가 여기 있는 이유"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신학적으로 은혜론(doctrine of grace)과 연결됩니다. 은혜론이란 인간의 공로나 자격과 무관하게 하나님이 먼저 다가오신다는 기독교 교리입니다.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에게 "너희 둘은 우레의 아들들(Sons of Thunder)"이라고 별명을 붙이십니다. 이 표현은 실제 성경 마가복음 3장 17절에 기록된 표현입니다(출처: Bible Gateway, 마가복음 3:17). 드라마는 이 별명이 붙게 된 배경을 이 장면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제 경험상 이런 방식의 서사 채우기가 성경 독자에게는 꽤 효과적으로 작동합니다. "아, 그래서 저 이름이 붙었구나" 하는 순간이 생기거든요.
다만 이 부분에서 한 가지 보충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드라마는 예수님의 포용성과 따뜻함을 잘 보여 주지만, 멜렉에게 하신 말씀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정서적 위로가 아닙니다. "회당으로 돌아가 말씀을 들으라, 그리고 전파하라." 여기에는 방향 전환, 즉 성경이 말하는 회개(metanoia)의 요청이 담겨 있습니다. 회개란 단순히 미안한 감정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은혜의 온도는 충분히 전달되지만, 이 변화의 요청을 함께 붙잡아야 드라마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요약: 야고보·요한의 '불 심판' 요청과 예수님의 꾸짖음은 은혜론의 핵심을 보여 주며, 멜렉에 대한 회당 귀환 요청은 회개의 방향성까지 담고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 더 초즌 시즌2 1화에서 멜렉은 실제 성경 인물인가요?
A. 아닙니다. 멜렉은 창작진이 만든 인물입니다. 다만 그가 경험하는 상황—가난, 범죄, 죄책감, 회복—은 성경의 여러 서사와 맞닿아 있습니다. 특히 잃은 양의 비유(누가복음 15장)를 인물로 구현한 것으로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Q. 더 초즌을 성경 공부 자료로 써도 될까요?
A. 보조 자료로는 충분히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드라마가 성경에 없는 대화와 감정을 창작으로 채운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제가 직접 시청하면서 느낀 건, 드라마를 먼저 보고 해당 성경 본문을 대조해 읽으면 이해가 훨씬 깊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Q. 요한이 글을 쓰는 장면은 성경 어디와 연결되나요?
A. 에피소드 초반에 요한이 목격자들의 기억을 수집하며 복음서를 집필하기 시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요한복음의 저작 배경을 극화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가 에피소드 마지막 낭독 장면과 연결되는 구조인데, 처음 봤을 때는 그 연결이 이렇게 촘촘한지 몰랐을 만큼 잘 짜여 있었습니다.
Q. '우레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이 실제 성경에도 있나요?
A. 네, 실제로 마가복음 3장 17절에 예수님이 야고보와 요한에게 '보아너게(Boanerges)', 즉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붙이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드라마는 그 이름이 붙게 된 이유를 이 에피소드의 사마리아 장면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택했고, 저는 이 해석이 꽤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론
더 초즌 시즌2 1화를 보고 나서 제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하나였습니다. 나는 사람을 볼 때 현재 상태로 단정 짓는 편인가, 아니면 회복의 가능성을 먼저 보는 편인가. 멜렉처럼 스스로도 포기한 사람에게 먼저 찾아가는 쪽은 어느 편인가. 그 질문이 꽤 불편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짚고 싶습니다. 드라마는 감동을 잘 전달하지만, 기준은 반드시 성경에 두어야 합니다. 드라마가 보여 주는 은혜는 진짜지만, 그 은혜는 변화의 방향성과 함께 작동합니다. 멜렉에게 하신 "회당으로 돌아가고 전파하라"는 말씀이 그 증거입니다. 감동을 받은 뒤에는 반드시 성경 본문을 직접 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Netflix - 더 초즌 시즌2 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