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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자신을 오래 지켜봐 온 누군가가 있다고 느껴본 적 있습니까? 더 초즌(The Chosen) 시즌 2 두 번째 에피소드를 처음 봤을 때, 저는 그 질문 앞에서 하나님이 나를 지켜본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홀로 기도하던 장면, 그리고 예수님의 "내가 너를 안다"는 말씀은 단순한 드라마 대사를 넘어 제 안 어딘가를 건드렸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기적보다 더 깊은 무언가 묻는 에피소드였습니다.
나다나엘 — 혼자였던 기도가 목격되었을 때
솔직히 이 장면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극 중 나다나엘은 건축가로서 공사 현장에서 격렬하게 싸우다 모든 것을 잃은 직후입니다. 로마의 의뢰를 받아 일한 유대인 건축가로서, 그는 능력 있는 사람이었지만 권위에 의해 짓밟혔습니다. 그리고 다음 장면, 그는 홀로 시편을 암송하며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하게 하소서.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이 장면이 특별한 이유는 나다나엘이 하나님께 화를 냈다는 점입니다. 그는 회당(synagogue)을 짓고 싶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회당이란 유대 공동체의 신앙과 교육, 사법 기능을 함께 담당하는 핵심 집회 공간을 말합니다. 기둥이 찬송을 부르고, 난간이 기도하는 그런 건물을 꿈꿨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당신이 무능해서 더 어려워졌다"는 말과 함께 추락했습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을 보면서 느낀 건, 하나님을 향한 분노와 신뢰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보고 계십니까?"라고 외치는 나다나엘의 절규는 무신론이 아니라, 오히려 간절한 신앙의 표현이었습니다. 신뢰가 없으면 그 질문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빌립이 찾아와 "와서 봐(Come and see)"라고 말합니다. 나다나엘은 나사렛이라는 지명 하나에 즉각 냉소했습니다. "거기서 무슨 선한 것이 난다고?" 포장도로도 없고 공공건물도 없는 촌구석에서 메시아가 나온다는 말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 앞에 섰을 때, 예수님은 빌립의 소개보다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혼자였던 너를, 내가 보았노라." 아무도 없던 그 시간, 아무도 목격하지 않았던 그 기도를, 메시아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나다나엘이 즉각 무너진 이유가 여기 있었습니다.
나다나엘은 유대인 건축가로서 로마 의뢰를 받아 일했지만 권위에 짓밟혔습니다
혼자였던 기도를 예수님이 이미 목격하셨다는 선언이 그의 신앙 고백을 이끌어냈습니다
"와서 봐"라는 빌립의 초대는 설명보다 경험을 먼저 권한 전도 방식이었습니다
요약: 나다나엘의 회심은 기적을 목격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가장 외로운 순간이 이미 목격되었음을 알게 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마태 — 숫자로 세상을 읽던 사람이 공동체를 배우기까지
마태라는 인물을 처음 이 드라마에서 봤을 때, 솔직히 좀 불편했습니다. 말이 느리고, 농담을 모르고, 젖은 장작을 구하러 협곡에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세리(tax collector), 즉 로마를 대신해 동족에게 세금을 거두던 직업인이었던 마태는 모두의 적이었고, 자기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덟 살에 히브리 서원을 졸업하고 열세 살에 첫 집을 샀다는 사실은 그의 천재성을 보여 주지만, 동시에 공동체에서 얼마나 일찍 단절되었는지를 말해 줍니다.
빌립과 마태의 대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특히 기억에 남은 건 이 부분입니다. 빌립이 "메시아를 만나고 나면 오직 현재만 중요해진다"고 말했을 때, 마태는 원으로 자신의 처지를 표현했습니다. 큰 원이 세상 모든 사람이고, 작은 점 하나가 자신이라고요. 그 비유는 수치와 도형으로 세상을 이해하던 마태가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에피소드에서 제 경험상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마태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는 설정입니다. 시몬은 "적들이 기록을 곡해할 수 있다"며 반대했고, 마태는 "말로만 전해지면 더 쉽게 왜곡된다"고 맞섰습니다. 이 장면은 실제로 복음서(Gospel)라는 문서 장르가 왜 탄생했는지를 극적으로 설명합니다. 복음서란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 죽음과 부활을 중심으로 기록된 초기 기독교 문서로, 신약 성경의 핵심을 이루는 서사 기록물입니다. 마태복음이 바로 그 중 하나입니다. 드라마는 그 기록의 시작점을 이렇게 상상력 있게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마태가 나무를 말리는 법을 배우고, 장갑 감는 법을 배우고, 농담을 배우는 장면들은 작아 보이지만, 공동체 안으로 한 걸음씩 들어오는 과정이었습니다. 출처: Bible Gateway — 마태복음 9장 9절에 따르면,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를 보고 단 한 마디로 "나를 따르라"고 부르셨습니다. 드라마는 그 부르심 이후의 삶, 즉 제자도(discipleship)의 현실적인 과정을 보여 줍니다. 제자도란 스승의 삶의 방식을 배우고 그 가르침을 삶으로 체화해 가는 훈련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요약: 마태는 숫자와 기록으로 세상을 이해하던 사람이었고, 그 재능이 복음서라는 형태로 제자도의 열매를 맺는 과정이 이 에피소드에 담겨 있습니다.
메시아 — "곧"이라는 가장 불확실한 단어를 쓰는 분
이 에피소드에서 예수님의 모습은 평소보다 훨씬 사적이었습니다. 시몬이 체계를 만들자고 건의했을 때, 예수님은 "지금은 내가 함께하니까"라고 답하셨습니다. 그 말 뒤에 숨어 있는 뜻을 시몬이 눈치챘습니다. "언젠가 떠나신다는 뜻이에요?" 예수님은 직접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곧"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불확실한 말인지를 이야기하셨습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느낀 건, 메시아가 자신의 수난을 이미 의식하고 계셨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일상을 함께하고, 수레를 직접 밀고, 친구를 만나러 일정을 잡아 주셨습니다. 빌립이 가이사랴 빌립보(Caesarea Philippi)에 사는 건축가 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하자, 예수님은 "그 정도 시간도 못 내면 친구가 남아나겠나?"라며 웃으셨습니다.
수리아(Syria)와 사마리아를 일부러 지나가는 예수님의 동선도 눈에 띄었습니다. 유대인에게 불결하다 여겨지던 지역과 민족을 향해 의도적으로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빌립이 "죽음을 원하는 것 같다"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바라는 건 아닌데"라며 문장을 완성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 주었습니다.
에스겔의 예언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젖은 장작 앞에서 에스겔 39장을 함께 암송하는 장면, 즉 곡과 마곡(Gog and Magog)의 무기를 7년간 불태운다는 묵시적 환상을 합창으로 읊는 장면은 유머러스했지만 동시에 공동체의 결속을 보여 주었습니다. 곡과 마곡이란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종말론적 적대 세력을 가리키는 상징적 표현으로, 유대인의 묵시 문학(apocalyptic literature) 전통에서 자주 인용됩니다. 출처: Theology of Work — 곡과 마곡 해설을 참고하면 이 표현의 신학적 배경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약: 이 에피소드의 예수님은 수난을 의식하면서도 제자들의 일상에 함께 머무르셨고, 그 모습이 메시아의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보여 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더 초즌 시즌2 2화는 성경 어느 부분을 다루나요?
A. 나다나엘의 부르심은 요한복음 1장 45~51절을 중심으로 하고, 마태의 기록 시작은 마태복음 전체의 배경을 드라마적으로 해석한 장면입니다. 시몬과 예수님의 체계 논의, 제자들의 이동 장면 등은 드라마의 창작 요소가 더해진 부분이지만, 복음서의 전반적인 흐름과 어긋나지 않습니다.
Q. 나다나엘은 성경에서 어떤 인물인가요?
A. 나다나엘은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제자로, 많은 신학자들이 다른 복음서에 나오는 바돌로매와 동일 인물로 봅니다. 예수님이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는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칭하신 인물입니다. 더 초즌에서는 건축가라는 직업적 배경이 추가되어 드라마적으로 풍성하게 묘사됩니다.
Q. 더 초즌은 성경을 얼마나 정확히 따르나요?
A. 더 초즌은 성경 본문에 충실하면서도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제자들의 일상, 감정, 관계를 작가의 해석으로 채웁니다. 성경 자체를 대체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이해를 돕는 보조 자료로 접근하는 것이 좋습니다. 드라마의 감동은 충분히 누리되, 창작된 대사와 장면은 작가의 해석임을 염두에 두고 성경 본문과 함께 검증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Q. 에스겔 예언 장면에서 곡과 마곡이 뭔가요?
A. 곡과 마곡은 에스겔서 38~39장과 요한계시록 20장에 등장하는 종말론적 세력을 가리키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드라마에서 제자들이 이 구절을 암송하며 젖은 장작으로 불을 피우는 장면은 실제 상황과 예언을 유머러스하게 연결한 창작 장면이지만, 유대인의 성경 암송 문화와 묵시 문학 전통을 자연스럽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결론
더 초즌 시즌 2 에피소드 2를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건 나다나엘의 질문이었습니다. "보고 계십니까?" 그 외침은 신앙이 흔들리는 순간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이 가장 날것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따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분을 신뢰한다는 증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태의 기록 습관, 나다나엘의 회심, 시몬과 예수님의 대화, 그리고 빌립의 초대까지 — 이 에피소드는 사람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방식이 얼마나 개인적이고 구체적인지를 보여 줍니다. 더 초즌이라는 드라마를 성경의 대체재가 아닌, 성경을 더 깊이 읽게 만드는 자극제로 사용하신다면 이번 에피소드는 충분히 그 역할을 합니다. 시즌 2의 다음 에피소드가 더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참고: Netflix — 더 초즌 시즌2 에피소드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