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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초즌 시즌2 3화》를 처음 틀었을 때, 솔직히 저는 드라마라고 생각하기보다 묵상 영상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예수님 주변 제자들이 서로 투닥거리고, 누군가는 자기 병을 왜 고쳐주지 않냐며 조용히 삭이고, 또 누군가는 유대인인 자신의 정체성에 지쳐 있었습니다. 화면 속 인물들이 2천 년 전 사람들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처럼 느껴졌고, 그 지점이 이 에피소드를 단순한 성경 드라마 이상으로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제자들의 고민: 기대와 두려움 사이
이번 에피소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마태가 시편 139편을 외우는 장면입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라는 구절인데, 이것이 단순한 암송 훈련이 아니라는 점이 금세 드러납니다. 마태는 스스로 "난 하늘에도 안 올라가고 스올에 자리를 펴지도 않을 건데"라며 의문을 품고, 예수님의 제자로 불렸다는 사실이 자신에게 정말 적용되는 건지를 내심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이죠.
이 장면에서 등장하는 시편(Psalm)은 구약 성경의 시가서 장르로, 개인의 감정과 신앙 고백을 담은 히브리 시 형식입니다. 여기서 시편이란 단순한 찬송가가 아니라 인간의 가장 솔직한 감정—두려움, 의심, 감사—을 하나님 앞에 쏟아내는 기도 문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태가 이 구절을 받아 쓰라는 지시를 받는 장면은,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 사이의 간극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제자들 사이의 갈등도 이번 에피소드의 핵심입니다. 시몬이 마태에게 "넌 로마인 밑에서 일하며 양심을 팔았는데 왜 갑자기 토라를 공부하냐"고 날 선 말을 던지는 장면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도 과거의 상처가 얼마나 쉽게 관계를 갈라놓는지를 보여줍니다. 토라(Torah)란 히브리어로 '가르침' 또는 '율법'을 뜻하며, 모세 오경—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을 지칭합니다. 쉽게 말해 유대인의 삶과 신앙 전체를 규율하는 핵심 경전입니다. 시몬이 이 토라를 들먹이며 마태를 압박하는 건,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산을 배반한 자로 규정하는 행위입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솔직히 불편했습니다. 저도 신앙 콘텐츠를 만들면서 과거의 실수를 들춰내는 시선과 맞닥뜨린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용서가 이론적으로는 쉬워 보이지만 실제 관계 안에서는 얼마나 어려운지, 이 에피소드는 그걸 설교 없이 보여줍니다.
또한 간질(뇌전증)을 앓았다는 인물이 예수님께 치료받은 후 제자들에게 시편 구절을 건네받는 장면, 그리고 라마라는 여성이 자신의 마비를 고쳐달라고 요청하지 못한 이유로 "내 병에도 불구하고 불러주신 것이 감사해서 말이 안 나왔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오래 머릿속에 남습니다. 치유(Healing)를 기적의 스펙터클로 소비하지 않고, 치유받는 이의 내면을 천천히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의 연출 방향이 다른 성경 드라마와 확실히 다릅니다.
- 마태의 시편 암송: 지식과 믿음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는 핵심 장치
- 시몬과 마태의 갈등: 신앙 공동체 안 상처와 용서의 어려움을 날것으로 묘사
- 라마의 침묵: 치유를 요청하지 못한 이유가 오히려 더 깊은 신앙 고백이 됨
- 메시아(Messiah) 기대의 다양성: 전사형 메시아를 기다렸던 제자들과 병자를 고치는 예수님 사이의 온도 차
성경 분별과 신앙 성장: 드라마로 성경 읽기
《더 초즌》을 두고 "성경과 다르다"는 지적을 종종 접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도 마태가 시편을 외우는 과정, 제자들이 저녁에 둘러앉아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마리아(예수님의 어머니)가 제자들과 함께 지내며 탄생 당시의 기억을 꺼내는 장면 등은 성경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내용입니다.
제가 직접 자막을 들여다보면서 느낀 건, 이 드라마가 성경의 행간(行間)을 채운다는 점입니다. 행간이란 기록된 사건과 사건 사이의 빈 공간—성경이 기록하지 않은 인물들의 감정, 대화, 일상—을 의미합니다. 《더 초즌》은 이 공간을 극적 상상력으로 채워 넣는데, 문제는 시청자가 이것을 성경 본문과 구분하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이번 화에서 스가랴서의 예언이 인용됩니다. "내가 이방 나라들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로 시작하는 구절(출처: Bible Gateway, 스가랴 14장)은 실제 성경 본문에 존재하는 메시아 예언입니다. 반면 제자들이 "메시아가 왜 전사가 아니냐"고 수군거리는 대화는 드라마가 더한 상상의 영역입니다. 이 둘을 섞어서 보면 성경의 권위가 흐려질 수 있습니다.
저는 신앙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항상 이 기준을 먼저 생각합니다. 감동이 크다고 해서 그것이 곧 성경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더 초즌》을 보고 감동받은 장면이 있다면, 그 장면이 어느 성경 본문에 근거하는지를 찾아보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이른바 성경적 해석학(Hermeneutics)의 기본 태도인데, 여기서 해석학이란 성경 본문을 바르게 이해하고 적용하기 위한 원칙과 방법론을 말합니다. 드라마가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창작인지를 가려내는 것, 그 자체가 성경 공부의 훌륭한 출발점이 됩니다.
마리아가 "요셉이 그 애를 내 품에 안겨 줬을 때 내가 예상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고 회상하는 장면은 많은 분들에게 깊은 감동을 줄 것입니다. 저도 이 장면을 보면서 잠시 멈췄습니다. 하지만 이 대화는 성경 본문에 없습니다. 감동의 크기와 성경적 근거의 유무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한국성서공회가 제공하는 성경 원문 데이터에 따르면, 예수 탄생 관련 서사는 누가복음 2장과 마태복음 1~2장에 집중되어 있으며(출처: 한국성서공회), 마리아의 내면 감정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눅 2:19)라는 한 문장으로만 기록됩니다. 드라마는 그 한 문장을 길게 풀어낸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더 초즌 시즌2 3화에서 마태가 외우는 시편은 실제 성경 구절인가요?
A. 네, 맞습니다. 에피소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는 시편 139편 8절의 실제 성경 본문입니다. 다만 마태가 이 구절을 암송하는 상황 자체는 드라마가 만들어낸 설정입니다.
Q. 더 초즌이 성경과 다른 내용을 넣는 이유가 뭔가요?
A. 성경은 예수님의 사역과 복음의 핵심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어 인물들의 일상이나 감정 흐름은 거의 서술되지 않습니다. 《더 초즌》은 이 빈 공간을 극적 상상력으로 채워 시청자가 성경 인물들에게 감정적으로 가까워지도록 돕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따라서 드라마는 성경을 대체하는 자료가 아니라 성경 묵상을 돕는 보조 콘텐츠로 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Q. 시몬이 마태한테 화내는 장면, 성경에 있는 내용인가요?
A. 아닙니다. 시몬과 마태가 세리 출신이라는 마태의 과거를 두고 직접 충돌하는 장면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드라마의 창작 부분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마태를 부르셨다는 사실(마태복음 9:9)만 간단히 기록합니다. 다만 세리가 당시 유대 공동체에서 얼마나 배척받았는지는 역사적으로 사실이며, 드라마는 이 역사적 맥락을 기반으로 갈등을 구성했습니다.
Q. 더 초즌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나요?
A. 네, 현재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합니다. 다만 플랫폼 제공 여부는 국가와 시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직접 검색해 확인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결론
《더 초즌 시즌2 3화》는 제자들의 신앙 성장 과정을 인간적인 언어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분명히 가치 있는 작품입니다. 메시아를 전사로 기대했던 사람, 치유를 요청하지 못하고 감사만 드리던 사람, 공동체 안에서 용서를 거부하는 사람—이 모두가 오늘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그 공감대가 이 드라마의 진짜 힘입니다.
그러나 제가 콘텐츠를 만들면서 항상 스스로에게 묻는 기준이 있습니다. "이 감동이 성경으로 나를 데려다 주는가?" 드라마를 보고 느낀 감동이 성경 본문을 펼치고 직접 확인하는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그 감동이 신앙의 자산이 됩니다. 시편 139편을 직접 읽어보시고, 스가랴서 14장을 찾아보시고, 마태복음 9장과 대조해 보시길 권합니다. 그 과정 자체가 이 드라마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