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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열 때마다 서로를 향한 날 선 말들이 가득합니다. 진영이 다르면 사람 자체를 부정하는 댓글, 가족끼리도 정치 얘기가 나오면 식탁이 조용해지는 풍경. 저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지쳤던 어느 날 밤, 《더 초즌 시즌3 1화》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산상수훈(Sermon on the Mount) 장면에서 멈칫했습니다. 2,000년 전 말씀이 2026년 한국을 정조준하는 것처럼 들렸거든요.
산상수훈,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 언어로 들렸다
《더 초즌》은 예수님의 생애를 다룬 크라우드펀딩 기반 드라마 시리즈입니다. 시즌3 1화에서 예수님은 갈릴리 들판에서 산상수훈을 가르치십니다. 드라마 속 자막을 보며 제가 직접 확인했는데, 대본이 마태복음 5~7장의 흐름을 상당히 충실하게 따릅니다.
여기서 산상수훈(Sermon on the Mount)이란 예수님이 산 위에서 제자들과 군중에게 하나님 나라의 삶의 원리를 선포하신 가르침의 총체입니다. 쉽게 말해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 나라 백성답냐"를 압축한 강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배우가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리라"고 말하는 순간, 저는 솔직히 좀 불편했습니다. 상대방이 먼저 잘못한 게 있는데 내가 화를 내는 것조차 심판받는다는 건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바로 이어지는 대사가 더 강렬했습니다. "예물을 드리려다가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화목하고 그 후에 예물을 드리라." 예배보다 관계 회복이 먼저라는 선언이었습니다.
드라마 안에서 바르나바가 설교 직후 흥분하며 말씀을 외워 읊는 장면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를 반복하며 걷습니다. 텍스트로 읽던 말씀이 누군가의 목소리로 살아 움직일 때의 감각, 저도 처음 이 드라마를 봤을 때 그게 달랐습니다.


WWJD, 착하게 살자는 말이 아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WWJD(What Would Jesus Do?)라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WWJD란 "예수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을까?"를 묻는 신앙 실천의 기준입니다. 1990년대 미국에서 팔찌 문화로 유행했지만, 사실 이 개념의 뿌리는 찰스 쉘던(Charles Sheldon)의 1896년 소설 《In His Steps》(출처: Project Gutenberg)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런데 저는 WWJD를 오랫동안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처럼 착하게, 친절하게, 양보하며 살자"는 정도로만 이해했거든요. 그런데 《더 초즌》을 보면 예수님은 끊임없이 불편한 진실을 직면시킵니다. 마태(세리)의 아버지는 아들을 부정합니다. 유다는 능력을 앞세워 자신을 마케팅하듯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두 사람 모두에게 동일하게 응대하십니다. 편 가르기가 없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오늘 한국 사회에서 WWJD를 적용하면 예수님은 어느 한 정치 진영의 지지자가 되지 않으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분석할 때 예언자적 비판(Prophetic critique)이라는 개념을 씁니다. 여기서 예언자적 비판이란 권력 구조와 종교적 위선 모두를 동시에 겨냥하는 공개적 발언 방식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진보도 보수도 동시에 불편하게 만드는 발언"이 예수님의 방식이었다는 것입니다.
- 권력자(헤롯, 바리새인)에게는 정의와 회개를 요구하셨습니다.
- 상처받은 민중(세리, 창녀, 병자)에게는 회복과 존엄을 선언하셨습니다.
- 제자들에게는 "먼저 네 눈의 들보를 보라"고 자기 성찰을 요구하셨습니다.
이 세 방향이 동시에 작동할 때, 비로소 WWJD가 팔찌 문구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제 경험상 이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면 불편한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그게 정상이라는 것을 드라마가 가르쳐 줬습니다.
화해, 말보다 먼저 발걸음이 있다
1화에서 제가 가장 오래 멈춰 있었던 장면은 마리아 막달레나가 시몬 베드로의 아내 에덴을 찾아가 사과하는 장면입니다. "내가 무서워서 끔찍한 말을 했어. 넌 그런 대접을 받아선 안 됐는데. 정말 미안해." 짧은 대사였는데, 에덴의 반응이 충격이었습니다. "누가 나한테 미안하다고 한 게 난생처음이라서."
이 장면은 드라마가 산상수훈의 메시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구현한 부분입니다. "먼저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는 말씀 직후, 마리아가 그것을 실천합니다. 설교를 듣고 바로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한국교회 내의 갈등 연구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적으로 지적됩니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기사연)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교인 중 교회 내 갈등을 경험한 비율이 상당히 높고, 그 해결 방식으로 '직접 대화'를 택하는 비율은 매우 낮습니다(참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우리는 화해(Reconciliation)를 말하지만, 실제로 먼저 발걸음을 내딛는 데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화해(Reconciliation)란 단순히 갈등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깨진 관계를 능동적으로 회복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화해는 결과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드라마 속 마리아처럼, 내가 먼저 걸어가는 행위 자체가 화해입니다.
저도 몇 년 전 오해로 멀어진 지인에게 연락을 못 하고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고 나서 솔직히 민망할 정도로 작은 용기를 내어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돌아온 답장 한 줄이 생각보다 훨씬 가벼웠고, 제가 머릿속에서 키워온 벽이 훨씬 높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2026년 한국, 이 말씀이 왜 지금 필요한가
드라마에서 군중 하나가 설교를 들은 뒤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가르침을 들어 본 적 있어?" "아니, 권위가 느껴지던걸. 배워서 나오는 권위가 아니었어." 율법 교사들의 권위는 인용에서 나왔지만, 예수님의 권위는 말씀 자체에서 나왔다는 관찰입니다.
2026년 한국은 극심한 정치적 대립 속에 있습니다. 탄핵 정국을 거치며 진영 간 감정의 골이 깊어졌고,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은 사람들을 더욱 분리된 정보 환경 속에 가두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여기서 심층분석하는 건 다른 주제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혁명적인 메시지는 진영 논리 바깥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산상수훈의 핵심 개념인 에토스(Ethos, 윤리적 품성)를 빌리자면, 예수님의 말씀이 권위를 가졌던 이유는 그분의 삶이 말씀과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에토스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설득의 세 요소 중 하나로, 말하는 사람의 품성과 신뢰성에서 나오는 설득력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저 사람은 저 말을 살고 있구나"라는 인상이 줄 수 있는 힘입니다.
드라마 속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 "세상을 바꾸실 분이라고 믿어요"라고 말하며 합류합니다. 그는 재무 능력과 네트워크를 강조하며 자신의 스펙을 먼저 내세웁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담담합니다. "나는 제자에게 그런 걸 요구하지 않아. 내가 바라는 건 날 닮도록 노력하는 것이네." 이 한 문장이 WWJD의 본질입니다. 능력이 아니라 닮음. 성과가 아니라 방향.
제 경험상, 정치적 갈등이 격화될수록 그리스도인이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것이 바로 이 '닮음'의 감각입니다. 내가 옳다는 확신이 강해질수록 상대를 향한 태도는 거칠어집니다. 예수님은 옳으셨지만 거칠지 않으셨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더 초즌 시즌3 1화는 성경 어느 부분을 다루나요?
A. 시즌3 1화는 마태복음 5~7장의 산상수훈을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군중에게 팔복, 살인과 분노, 원수 사랑, 주기도문,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는 내용 등을 가르치시는 장면이 드라마 전반부를 채웁니다. 성경 본문과 비교하며 보면 이해가 더 깊어집니다.
Q. WWJD가 요즘 다시 주목받는 이유가 있나요?
A. 사회적 갈등이 극심해질수록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다시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WWJD는 단순히 착하게 살자는 구호가 아니라, 권력에는 정의를 요구하고 이웃에게는 사랑을 실천하는 예수님의 구체적 방식을 묻는 질문입니다. 《더 초즌》 같은 콘텐츠가 이 질문을 대중적으로 다시 환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Q. 더 초즌은 성경 내용을 얼마나 충실히 따르나요?
A. 드라마 제작팀은 성경 본문을 기반으로 하되,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제자들의 일상과 배경을 창작으로 채우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예수님의 직접 발화 부분은 성경 원문에 가깝게 유지하는 경향이 있고, 자막 대본을 원문과 비교해보면 주요 가르침은 복음서와 일치합니다. 다만 드라마는 드라마이므로 창작 요소를 성경과 혼동하지 않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Q. 산상수훈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가장 현실적인 첫걸음은 뭔가요?
A. 드라마가 보여주는 답은 의외로 작습니다. 마리아가 에덴에게 먼저 걸어가 "미안하다"고 말한 것처럼, 관계에서 내가 먼저 움직이는 것입니다. 거창한 화해 선언이 아니라, 오해가 있는 그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이 산상수훈의 가장 작은 실천 단위입니다.
결론
《더 초즌 시즌3 1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감각은 감동이 아니라 불편함이었습니다. 산상수훈은 읽을 때보다 귀로 들을 때 훨씬 더 날카롭게 찔렸고, 드라마는 그 말씀을 2,000년 전 갈릴리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들리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WWJD는 팔찌 문구가 아닙니다. 화해는 말이 아니라 발걸음입니다. 산상수훈은 감동의 대사 모음이 아니라 삶의 기준입니다. 2026년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이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하나입니다. "당신은 지금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습니까?"
다음 화를 보기 전에, 먼저 연락하지 못한 그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가장 정직한 시청 후기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