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솔직히 이번 화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보내시는 장면은 성경에서 읽었을 때와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작은 야고보와 예수님의 대화, 마태 가족의 화해 장면은 단순한 드라마 연출을 넘어 신앙의 핵심 질문을 건드렸습니다. 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고통은 즉시 해결해 주시고, 어떤 사람의 고통은 그대로 두시는 걸까요? 저도 오래 붙들고 있던 질문입니다.


파송의 배경 — 왜 지금, 왜 둘씩인가
이번 화의 출발점은 가버나움 동쪽에 급속도로 형성된 야영지입니다. 산상수훈(Sermon on the Mount), 즉 마태복음 5~7장에 기록된 설교를 들은 군중이 예수님을 따라 집단으로 이동하면서 생겨난 장면이죠. 여기서 산상수훈이란 예수님이 무리 앞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과 윤리를 가르친 핵심 설교를 말하며, 기독교 역사상 가장 널리 인용되는 본문 중 하나입니다.
드라마는 이 군중을 로마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를 먼저 보여 줍니다. 퀸투스와 가이오가 야영지를 바라보며 긴장하는 장면, 아티쿠스가 시몬을 옥상에서 만나 "셀롯파가 이미 와 있다"고 경고하는 장면이 연달아 나옵니다. 제가 처음 봤을 때는 단순한 긴장 조성 장치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이게 예수님이 제자들을 '지금 당장' 흩어 보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구조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도(Apostle)라는 역할을 공식 부여합니다. 사도란 '보냄받은 자'라는 뜻으로, 단순히 따르는 제자(Disciple)와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쉽게 말해, 배우는 사람에서 파견되는 사람으로 신분이 바뀌는 순간입니다. 성경에서 이 파송 사건은 마태복음 10장과 마가복음 6장에 기록되어 있으며(출처: Bible Gateway, 마태복음 10장), 드라마는 이 본문을 기반으로 대화와 감정을 풍성하게 재구성했습니다.
- 파송 지역: 시몬·유다(북쪽 가이사랴 빌립보), 안드레·빌립(동쪽 나베), 나다나엘·다대오(남쪽 페레아), 요한·도마(남서쪽 욥바), 큰 야고보·작은 야고보(서쪽 사론 평야), 마태·지(여리고)
- 지참 금지 목록: 빵, 배낭, 돈, 여벌 옷 — 오직 지팡이와 신발만 허용
- 핵심 선포 메시지: "천국이 가까이 왔다"
제자도의 핵심 — 작은 야고보와 마태의 장면이 말하는 것
이번 화에서 제가 가장 오래 붙들고 앉아 있었던 장면은 두 개입니다. 작은 야고보와 예수님의 단둘 대화, 그리고 마태 가족의 화해 장면입니다.
작은 야고보는 장애를 가진 제자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직접 묻습니다. "다른 사람은 고쳐 주시면서 왜 저는 안 고쳐 주시나요?" 이 질문이 드라마 전체에서 가장 솔직한 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자네를 믿으니까." 신뢰(Trust)를 고침의 이유로 제시한 게 아니라, 고치지 않음의 이유로 제시한 거죠. 여기서 제자도(Discipleship)란 단순히 예수님을 따르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와 고통을 그분의 목적 안에서 재해석하는 과정임을 보여 줍니다.
저도 제 삶에서 이해되지 않는 어려움이 오래 지속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 질문을 했더라면, 이 대답을 들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욥기를 인용하시는 장면("주신 이도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은 고통이 설명 불가능한 영역에 있을 때 남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리킵니다.
마태와 부모의 화해 장면은 다른 차원에서 움직입니다. 마태는 세리(Tax Collector)였습니다. 세리란 로마 제국을 위해 동족에게 세금을 걷던 사람으로, 당시 유대 사회에서 배신자이자 죄인으로 낙인찍힌 직업이었습니다. 아버지 알패오의 "용서한다, 아들아"라는 한마디가 나오기까지의 침묵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용서란 감정이 따라오기 전에 먼저 말로 선언해야 한다는 것을, 이 장면이 아주 정직하게 보여 줬습니다.
화해와 오늘 — 마태와 지의 조합이 지금도 유효한 이유
예수님이 마태와 지(시몬 셀롯)를 한 팀으로 묶은 장면은 드라마에서도 제자들이 가장 의아해하는 순간입니다. 셀롯파(Zealots)란 로마 제국에 무력으로 저항하던 유대 민족주의 운동 세력입니다. 세리는 그 로마를 위해 동족에게 세금을 걷던 사람이었으니, 두 사람은 이념적으로 완전한 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명확했습니다. "다들 과거와 다른 사람이다. 모두 그걸 명심해라." 이 한마디가 두 사람의 팀 구성에 대한 모든 설명이었습니다. 복음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New Identity)이란, 과거의 진영과 이념보다 더 강한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이죠.
제가 지금 한국 사회를 보면서 이 장면이 자꾸 떠오릅니다. 다만 이 장면을 특정 정치 세력의 논리로 바로 끌어쓰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화해는 어느 한쪽이 옳다는 전제 위에 있지 않습니다. 마태도, 지도 모두 "과거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진정한 화해란 상대를 이기는 방식이 아니라 먼저 자신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을, 이 조합이 보여 줍니다.
드라마 제작사 크라운 미디어(Crown Media)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더 초즌은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된 독립 기독교 드라마로, 시즌 1부터 전 세계 1억 명 이상이 시청했습니다(출처: Angel Studios, The Chosen 공식 사이트). 이 규모가 말해 주는 것은, 이 드라마가 신앙인뿐 아니라 신앙과 무관한 사람들에게도 뭔가를 건드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반응은 단순히 제작 완성도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자기 삶의 질문을 이 드라마에서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더 초즌 시즌3 2화에서 작은 야고보를 왜 고쳐 주지 않나요?
A. 드라마 속 예수님은 "자네를 믿으니까"라고 답합니다. 이미 고침받은 사람의 이야기보다,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 더 많은 사람에게 더 강한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이유입니다. 이 장면은 성경에 없는 창작 대화이지만, 고통의 의미를 다루는 성경 전체의 주제와 일치합니다.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 불편함이 오히려 이 장면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 아닐까요?
Q. 마태와 셀롯인 시몬(지)이 한 팀이 된 게 성경에도 나오나요?
A. 마태복음 10장과 마가복음 6장에 열두 제자를 둘씩 파송한 기록이 있으나, 누가 누구와 짝을 이뤘는지는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태와 시몬 셀롯이 한 팀이라는 설정은 드라마의 창작입니다. 다만 열두 제자 목록에 두 사람이 함께 언급되는 것은 사실이며, 이 조합의 상징성은 드라마가 잘 살려낸 부분입니다.
Q. 더 초즌은 성경 내용과 얼마나 다른가요?
A. 파송 사건 자체는 마태복음 10장을 충실히 따르지만, 마태 가족의 화해 장면, 작은 야고보와의 단독 대화, 도마와 라마의 청혼 이야기 등은 성경에 없는 창작 장면입니다. 제작진은 "성경의 빈칸을 채우는 방식"이라고 설명하며, 핵심 신학적 메시지는 성경과 일치하도록 설계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드라마를 성경 공부의 대체재가 아닌 입문 보조 자료로 활용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Q. 더 초즌 시즌3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넷플릭스와 Angel Studios 공식 앱에서 시청 가능합니다. 국내에서는 넷플릭스에서 한국어 자막 또는 더빙으로 제공됩니다. Angel Studios 앱은 무료 시청도 일부 가능합니다.
결론
더 초즌 시즌3 2화는 제게 두 가지 질문을 남겼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따르고 있는가, 그리고 내 삶에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작은 야고보의 장면은 그 질문에 완전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방향으로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마태와 지의 조합, 그리고 마태 가족의 화해 장면은 복음이 단순한 종교적 개념이 아니라 실제 관계와 정체성을 바꾼다는 것을 드라마적으로 잘 구현했습니다. 드라마이기에 창작이 있고, 그 창작 때문에 성경 본문을 함께 찾아보게 된다면 오히려 좋은 역할을 한 셈입니다. 다음 화가 기다려진다면, 마태복음 10장을 먼저 읽고 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