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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초즌 시즌4 6화 (선한 목자, 수전절, 한국교회)

기도하는예나아빠 2026. 7. 18. 05:23

목차


    더 초즌 시즌4-6화 대표그림 컬러북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더 초즌 시즌4 6화》를 틀었을 때 저는 그냥 익숙한 성경 이야기를 드라마로 보는 정도겠거니 했거든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에서 멈칫하고 말았습니다. 그 말 한마디가 제가 교회에서 겪어온 수많은 장면들을 한꺼번에 소환했기 때문입니다. 재정 문제로 공동의회가 살벌해지던 날, 표정 관리가 안 되던 그 봄밤이 떠오른 건 분명히 이유가 있었습니다.



    수전절이라는 무대, 그 안에 담긴 묵직한 질문

    이 에피소드의 배경은 수전절(Feast of Dedication)입니다. 수전절이란 히브리어로 '하누카(Hanukkah)'라고도 불리며, 기원전 2세기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힌 이후 마카비 가문이 성전을 되찾고 제단을 재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빼앗긴 것을 다시 찾았다"는 기억을 여드레 동안 촛불을 켜며 되새기는 날이에요.

    드라마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마카비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은 저한테 꽤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성경 이야기를 지식으로 아는 것과 공동체 안에서 함께 기억으로 나누는 건 전혀 다른 무게감이 있더라고요. 65,000명의 그리스 군대에 맞선 소수의 반란군, 딱 하루치 기름이 여드레 동안 탔다는 이야기는 지금 봐도 서늘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수전절 장면 자체보다 그 뒤에 이어지는 재정 갈등 대화가 더 날카롭게 박혔습니다. 유다가 모금소 설치를 제안하고, 마태가 회계 장부의 수치를 따지고, 존이 "그냥 여쭤봐"라고 짧게 말하는 그 흐름. 제 경험상 이건 2,000년 전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사역의 방향보다 예산 사용처가 먼저 의제에 오르던 그 회의실 풍경이 겹쳐 보였거든요.

    드라마 속 유다의 고민은 단순한 탐욕이 아닙니다. 그는 정말로 메시아의 사역이 자금 부족으로 멈추는 걸 두려워하고 있어요. 이 장면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선한 의도가 어떻게 조금씩 비틀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복선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내일 설교를 들을 때 네 안의 느낌에도 귀 기울여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이 유다에게도, 저에게도 같은 무게로 떨어졌습니다.

    • 수전절(하누카): 성전 재봉헌을 기념하는 유대 절기, 여드레 동안 촛불을 켬
    •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제단에 돼지를 도살하고 토라를 불태운 셀레우코스 왕조의 왕
    • 마카비(Maccabee): '망치'라는 별칭을 가진 유다 마카비가 이끈 저항 운동, 7년 항쟁 끝에 예루살렘 탈환
    • 멸망의 가증한 것(Abomination of Desolation): 성전이 이방 우상으로 더럽혀진 사건을 가리키는 표현
    요약: 수전절이라는 절기의 역사적 맥락 위에서, 드라마는 신앙 공동체 안의 재정 갈등과 선한 의도의 위험성을 동시에 포착합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 이 말이 2026년 한국교회에 던지는 것

    예수님께서 솔로몬 행각에서 설교하시는 장면은 이 에피소드의 절정입니다. 솔로몬 행각(Solomon's Porch)이란 예루살렘 성전의 동쪽 외랑(外廊), 즉 바깥 기둥 열을 말합니다. 당시 랍비들이 공개 토론과 가르침을 나누던 장소로, 요한복음 10장의 선한 목자 설교가 바로 이곳을 배경으로 합니다(출처: Bible Gateway, 요한복음 10장).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느낀 건, 예수님의 말씀보다 그걸 방해하는 군중의 목소리가 얼마나 빨리 커지는지였습니다. 바리새인과 일부 종교 지도자들은 "신성모독자"를 외치며 돌을 집어 들고, 유다는 맞서 싸우려 합니다. 존은 그 순간에도 "말씀에 집중해"라고 붙잡습니다. 저도 그때 존의 편이 맞는지 유다의 편이 맞는지 한참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선한 목자 선포는 그 소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선한 목자(Good Shepherd)란 단순히 온화한 지도자를 뜻하는 게 아닙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이 개념은 '삯꾼 목자'와 대비되는데, 삯꾼은 이리가 오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는 반면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자입니다. 쉽게 말해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기 안위보다 공동체를 먼저 택하는 리더십의 원형이에요.

    제 경험상, 이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사역하다 보면 "이 정도면 됐다"는 순간이 옵니다. 사람이 다치기 전에 슬쩍 물러서고 싶은 마음, 저도 잘 알아요. 드라마 속 종교 지도자들이 처형 근거로 삼은 두 가지 혐의는 바로 거짓 선지자(false prophecy)와 안식일 위반(Shabbat-breaking)이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란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말하는 자이며, 안식일 위반은 모세 율법상 사형에 해당하는 중대 사안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두 혐의가 정치적 목적에 의해 조합된 무기로 쓰이는 장면은, 복음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어떤 식으로 권력이 반응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2026년 현재 한국교회 신뢰도는 여전히 회복 중입니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 신뢰도는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여왔고, 교회 내 재정 불투명성과 성장 지상주의가 핵심 원인으로 지목됩니다(출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드라마 속 유다의 고민과, 제가 봐온 한국교회의 고민이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삯꾼의 길이 훨씬 안전해 보이는 시대에, 선한 목자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급진적인 결단입니다.

    성경과 드라마 사이에서 균형 잡기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건, 《더 초즌》은 성경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요한복음 10장에는 선한 목자 선포가 기록되어 있지만, 제자들의 팔씨름 장면, 수전절 선물 교환, 유다의 모금소 아이디어, 도마와 베드로의 허물없는 대화는 모두 극적 상상력으로 채워진 부분입니다. 저는 이런 연출이 오히려 당시 사람들의 온도를 느끼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드라마를 통해 받은 감동을 성경 본문 자체의 권위와 혼동하지 않는 균형 잡힌 시각도 함께 필요합니다.

    요약: 선한 목자 선포는 2,000년 전 솔로몬 행각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2026년 한국교회가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를 정확히 가리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수전절과 하누카는 같은 건가요?

    A. 맞습니다. 수전절은 한자식 번역이고, 하누카는 히브리어 원어 표기입니다. 둘 다 기원전 164년 마카비가 예루살렘 성전을 탈환하고 제단을 재봉헌한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로, 여드레 동안 촛불을 켜며 기적을 기억합니다. 드라마에서 예수님이 하누카 촛불 기도를 직접 인도하시는 장면은 그 역사적 배경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더라고요.

     

    Q. 더 초즌 시즌4 6화에서 유다가 돈 문제로 갈등하는 이유가 뭔가요?

    A. 유다는 요안나가 보낸 후원금이 예상보다 빠르게 줄어드는 것을 보고 모금소 설치를 제안합니다. 그의 의도 자체는 메시아의 사역을 지속시키겠다는 것이지만, 예수님은 그 발상보다 내일 설교 때 자신의 내면을 살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대화는 선한 의도가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치로 읽힙니다.

     

    Q. 더 초즌은 성경과 얼마나 다른가요?

    A. 핵심 사건과 예수님의 말씀은 성경 본문을 기반으로 하지만, 제자들의 일상 대화와 감정, 수전절 선물 교환 같은 장면은 극적 상상력이 더해진 부분입니다. 이 드라마를 성경 해설 자료로 활용하되, 성경 본문과 동일시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저는 드라마로 먼저 장면을 느끼고, 이후에 요한복음 원문을 다시 읽는 방식으로 보고 있습니다.

     

    Q.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이 6화 마지막에 나오는데, 이게 어떤 의미인가요?

    A. 예수님은 처음 전갈을 받았을 때 "죽을병이 아니다"라고 하셨지만, 에피소드 말미에 나사로의 죽음을 확인하시고 "자네들의 믿음을 위해 내가 거기 없었던 것이 잘된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요한복음 11장 나사로 부활 사건의 전주곡으로, 예수님께서 죽음 너머를 이미 내다보고 계셨음을 암시하는 장면입니다.

     

    결론

    《더 초즌 시즌4 6화》를 다 보고 나서 한동안 화면을 끄지 못했습니다. 선한 목자라는 개념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이렇게 오늘의 이야기로 다가온 건 처음이었거든요. 드라마는 수전절이라는 역사적 절기를 배경으로 삼으면서, 신앙 공동체가 얼마나 쉽게 조직과 자금과 정치 논리에 흔들릴 수 있는지를 군더더기 없이 보여줍니다.

    직접 겪어보니, 교회 안에서 가장 무서운 위기는 박해가 아니라 내부의 피로감과 현실 타협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그 지점을 건드립니다. 선한 목자의 방식이 삯꾼보다 훨씬 불편하고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하는 것, 그게 오늘 한국교회에 필요한 급진성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시즌4 나머지 에피소드도 계속 챙겨볼 이유가 생겼습니다.

    참고: 더 초즌 시즌4 6화 — Netfl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