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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유다 (다말 사건, 리더십 변화, 회개)

기도하는예나아빠 2026. 8. 31. 05:20

목차


    교회에서 오래 섬기다 보면 이런 의문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왜 저 사람이 지도자가 됐을까? 처음부터 흠 없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저도 한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를 다시 천천히 읽으면서 유다라는 인물에서 멈추게 됐습니다. 이 사람, 처음에는 정말 냉정합니다. 동생을 은 20개에 팔자고 한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결국 이스라엘 12지파 중 가장 대표적인 지파의 조상이 됩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는지, 그 흐름이 생각보다 훨씬 드라마틱했습니다.



    다말 사건 — 유다를 바꾼 결정적 순간

    창세기 37장의 유다는 솔직히 말해서 매력이 없습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자고 할 때 유다가 꺼낸 말은 "차라리 팔아버리자"였습니다. 죽이는 것보다는 낫지만, 그 안에는 이익 계산이 깔려 있었습니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장면을 두고 유다가 냉소적 현실주의자(cynical realist)였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냉소적 현실주의란, 도덕적 판단보다 현실적 이득을 우선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흥미로운 건 그조차도 요셉을 가리켜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인간적 연민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는 뜻인데, 저는 이 부분이 오히려 더 씁쓸하게 읽혔습니다. 알면서도 팔아버린 거니까요.

    그런데 창세기 38장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요셉 이야기가 한창 진행되는 중에 갑자기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가 끼어듭니다. 처음 읽을 때는 솔직히 당황스러웠습니다. 흐름이 끊기는 것 같기도 하고, 내용도 그리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장을 플롯 장치(plot device)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플롯 장치란 서사 전체에서 인물의 변화나 주제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삽입된 이야기 구조를 말합니다. 다말 이야기가 바로 그 역할을 합니다. 유다가 다말에게 잘못을 저질렀고, 이것이 드러났을 때 유다는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나보다 옳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정말 쉽지 않은 고백입니다. 지도자 위치에 있을수록 잘못을 인정하는 말 한마디가 더 무겁게 느껴지거든요. 유다는 그걸 했습니다. 그 고백 이후 성경은 그가 다말을 다시 가까이하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말만 한 게 아니라 행동이 달라졌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지점이 유다 변화의 실제 출발점이라고 봅니다.

    • 창세기 37장: 요셉을 노예로 팔자고 제안 — 이익을 우선한 냉정한 판단
    • 창세기 38장: 다말에게 "그녀가 나보다 옳다" 공개 시인 — 공개적 책임 인정
    • 변화의 핵심: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이 실제로 달라짐
    요약: 다말 사건은 유다가 처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행동을 바꾼 전환점으로, 이후 가족 공동체 회복의 밑바탕이 됩니다.

     

    리더십 변화 — 베냐민 앞에서 드러난 진심

    창세기 44장은 유다의 변화가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요셉이 이집트 총리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형제들은 그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한 채 곤경에 빠집니다. 요셉은 베냐민이 잔을 훔쳤다는 명목으로 그를 노예로 삼으려 합니다. 이때 유다가 나섭니다. 그의 연설은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지는데,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무언가 뭉클한 게 있었습니다. 예전의 유다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을 하거든요.

    유다는 "내 아버지"라는 표현을 반복하면서 야곱이 베냐민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설명합니다. 과거에 요셉을 편애했던 아버지에게 질투와 분노를 품었던 사람이, 이제는 그 아버지의 마음을 가장 먼저 헤아리고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이런 변화가 하루아침에 오지 않습니다. 시간이 걸리고, 내면에서 무언가가 실제로 바뀌어야 가능한 말입니다.

    더 인상적인 건 유다가 한 말의 구조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다"고 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섭리(providence)를 인정하는 신학적 고백입니다. 여기서 섭리란 하나님이 역사와 개인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신다는 믿음을 말합니다. 다말 사건에서 시작된 자기 성찰이 이제 하나님을 향한 인식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이 부분이 저는 유다 이야기에서 가장 신학적으로 깊은 지점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유다는 결단을 내립니다. 베냐민 대신 자신이 종이 되겠다고 자청합니다. 이건 단순한 희생이 아닙니다. 구속(substitution), 즉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자신이 그 결과를 짊어지는 행위입니다. 과거에 요셉을 팔아넘겼던 그 사람이, 이제는 동생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사람이 됩니다. 요셉은 이 장면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형제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힙니다. 유다의 헌신적인 말과 행동이 형제 공동체의 화해와 회복이라는 절정을 이끌어낸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가 결코 오래된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2026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조사에 따르면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는 19%에 불과합니다(출처: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이 숫자 앞에서 저는 유다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직분보다 책임이, 권위보다 희생이 먼저인 지도자를 교회가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왔는지 말입니다.

    야곱은 마지막에 유다를 축복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창세기 49:10). 여기서 규(scepter)란 왕권을 상징하는 지팡이로, 통치의 권위를 나타내는 고대 근동 문화의 상징입니다. '실로'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성경 번역과 해석 전통마다 차이가 있어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 예언이 다윗 왕조와 연결되고, 궁극적으로는 메시아(Messiah)를 가리키는 흐름으로 이어진다는 점은 성경신학 전반에서 지지를 받는 해석입니다(출처: Bible Gateway, 창세기 49:8-10). 메시아란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를 뜻하는 말로,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칭호로 사용됩니다.

    요약: 유다의 리더십 변화는 화려한 재능이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고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책임과 희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유다가 요셉 대신 이스라엘의 대표 지파가 된 이유가 뭔가요?

    A. 역사적으로는 출애굽 이후 유다 지파의 인구가 가장 크게 늘었고, 다윗 왕이 유다 지파에서 나오면서 지파의 위상이 굳어졌습니다. 창세기 안에서는 유다가 인격적 변화를 통해 가족 공동체의 화해를 이끄는 역할을 했고, 야곱의 축복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요셉이 탁월한 인물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성경은 왕권의 계보를 유다에게 돌렸습니다.

     

    Q. 다말 사건이 왜 창세기에 들어간 건가요?

    A. 표면적으로는 요셉 이야기의 흐름을 끊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학자들은 이 장을 유다의 내면 변화를 보여주는 서사적 장치로 봅니다. 유다가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이후 창세기 44장에서 보이는 책임감과 희생의 밑바탕이 됩니다. 이 두 장면을 연결해서 읽으면 유다가 왜 변화했는지가 훨씬 선명하게 보입니다.

     

    Q. 창세기 49장의 '실로'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건가요?

    A. '실로'의 정확한 의미는 성경 번역과 해석 전통마다 차이가 있어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유다 지파에서 다윗 왕조가 나오고,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유다 지파의 후손으로 소개된다는 점에서 메시아적 예언으로 연결해 읽는 흐름은 성경신학 전반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집니다.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읽는 것이 좋습니다.

     

    Q. 유다와 요셉 중 누가 더 중심 인물인가요?

    A. 분량으로 보면 요셉 이야기가 훨씬 깁니다. 그러나 창세기 전체의 구속사적 흐름을 따라가면 유다의 역할이 결코 작지 않습니다. 두 인물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련을 겪고 변화하면서 이집트에서 만납니다. 요셉이 외적인 고난을 통해 성장했다면, 유다는 내면의 죄를 직면하며 변화했다는 점에서 서로 다른 축을 이룹니다.

     

    결론

    유다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읽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남은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완성된 사람을 쓰시는 게 아니라, 변화하는 과정 중에 있는 사람을 쓰신다는 것. 처음부터 모범적이었던 요셉이 아닌, 실수하고 죄짓고 그것을 인정하면서 돌아온 유다의 계보에 왕권을 이어가신 것은 단순한 문학적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혹은 어떤 공동체에서든 지도자를 세울 때 가장 먼저 볼 것이 무엇인지 유다는 하나의 기준을 보여줍니다. 처음부터 완벽했느냐가 아니라, 자신의 잘못 앞에서 얼마나 정직하게 섰느냐입니다. 제 경험상 그 정직함이 있는 사람이 결국 공동체를 지키더라고요. 창세기를 성경공부 교재로 쓰거나 인물 중심으로 묵상하시는 분이라면, 유다와 요셉의 두 흐름을 나란히 놓고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보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TFg5HlTY4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