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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평신도로 섬기다 보면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채 결정적인 순간마다 공동체를 붙들어 온 분들을 만납니다. 성경 속 십보라를 처음 제대로 들여다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출애굽기 전체에서 이름이 단 세 번 등장하는 이 여인이, 출애굽의 과업이 아예 시작조차 못 할 뻔했던 순간을 직접 손으로 막아낸 인물이라는 사실을 그때서야 비로소 실감했습니다.
할례 언약 — 이방 여인이 꿰뚫어 본 것
십보라는 미디안 제사장 르우엘(이드로)의 딸입니다. 미디안 족속은 아브라함의 서자 미디안에게서 나온 혈통으로, 이스라엘과 완전히 남남인 이방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을 애굽에 팔아넘긴 상인들이 미디안 사람이었고, 모세는 반대 방향으로 애굽을 탈출해 미디안으로 흘러 들어왔습니다. 아브라함의 두 갈래 후손이 광야 우물가에서 다시 마주치는 장면이 모세와 십보라의 만남입니다.
제가 이 족보 구조를 파악하고 나서야 십보라의 행동이 훨씬 입체적으로 읽혔습니다. 그녀는 처음부터 이스라엘의 언약 전통 안에서 자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할례(割禮, Circumcision)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표징으로, 남자아이가 태어난 지 8일 안에 포피를 잘라내는 의식입니다. 쉽게 말해 이스라엘 남자로 태어났다면 이 표를 몸에 새겨야만 언약 백성 안에 속할 수 있는, 끊을 수 없는 신체적 서약이었습니다. 십보라에게 이것은 친정에서 배운 관습이 아니라 남편 쪽 하나님의 규례였습니다.
모세는 40년간 미디안 공동체에 살면서 아들에게 이 할례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어느 아들인지 성경은 특정하지 않지만, 모세가 애굽으로 돌아가던 그 길에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셨습니다(출처: 대한성서공회 성경 출애굽기 4:24). 이 사건은 하나님이 바로에게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고 선포하라 명하신 직후에 발생했습니다. 자기 장자를 언약 밖에 둔 채 민족 전체의 구원을 외치러 가는 모순을 하나님이 짚으신 것이었습니다.
이 위기 앞에서 손을 쓴 것은 모세가 아니라 십보라였습니다. 그녀는 돌칼로 아들의 포피를 직접 베어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발에 대며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남편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피남편(blood-bridegroom)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원문에서 피를 통해 맺어진 관계를 가리키는 말로, 원망과 고백 사이 어딘가에 있는 복합적인 언어입니다. 제 경우엔 이 짧은 외침이 원망보다는 납득에 가깝게 읽혔습니다.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십보라는 미디안 사람이었지만 언약의 논리를 꿰뚫어 보았습니다. 구속사(救贖史, Heilsgeschichte)란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역사적 흐름 전체를 가리키는 신학 용어입니다. 이 구속사의 관점에서 보면, 십보라가 아들의 피를 흘린 그 숙소는 훗날 애굽 전역에서 장자가 쓰러지던 유월절 밤, 문설주에 바른 어린양의 피와 같은 원리가 먼저 작동한 자리였습니다. 피를 통해 죽음이 넘어가는 그 문법이 출애굽 전야에 한 집에서 먼저 시연되었고, 그 손이 이방 여인의 손이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꽤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습니다.
- 할례: 아브라함 언약의 신체적 표징, 8일 안에 행해야 하는 규례
- 피남편: 피를 매개로 맺어진 관계를 뜻하는 히브리어 표현
- 구속사적 의미: 십보라의 할례 행위는 유월절 피의 예표로 해석됨
- 행위 주체: 이방 여인 십보라가 직접 돌칼을 들어 할례를 시행한 유일한 여성 기록
피남편의 아내가 걸어간 길 — 기다림과 흔적
할례 사건 이후 십보라의 이름은 출애굽기 4장 26절에서 끊깁니다. 다음 번에 그녀의 이름이 다시 나오는 것은 18장 2절, 무려 13장 뒤입니다. 그 13장 안에는 열 가지 재앙, 유월절, 홍해가 갈라지는 장면, 만나, 아말렉 전투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출애굽 서사 전체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들이 펼쳐지는 그 시간 동안 십보라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모세가 그녀를 '돌려보냈다'는 사실을 18장에서 간접적으로 언급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보내다'라는 히브리어 동사가 모세가 바로에게 "내 백성을 보내라(let my people go)"고 외칠 때 쓰인 단어와 동일하다는 점입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요구한 것을 아내에게도 행한 셈인데, 이 대목에서 제가 직접 원문 대조표를 찾아봤을 때 받은 인상은 꽤 씁쓸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가 거론됩니다. 하나는 애굽으로 향하는 길이 가족을 데리고 가기엔 너무 위험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지도자의 사역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십보라는 역사의 중심 바깥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녀가 미디안 아버지의 집에서 보낸 그 시간을 성경은 자세히 기록하지 않습니다. 두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을 데리고 남편의 소식을 전해 들으며 기다렸을 뿐입니다. 게르솜이라는 이름은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는 뜻입니다. 고향이 미디안이었던 십보라는 아이를 부를 때마다 남편의 나그네 고백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이름이 붙은 아이를 매일 부르는 삶이 어떤 감각인지는 글로 다 설명되지 않습니다.
재회를 먼저 주선한 것은 부부 자신이 아니라 장인 이드로였습니다. 이드로는 모세에게 전갈을 보내 "네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왔노라"고 알렸고, 모세는 장인을 맞아 절하고 입맞추는 깊은 예를 표했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재회 장면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드로의 방문은 단순한 가족 상봉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세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홀로 백성의 송사를 판결하는 모습을 보고 "이 방식은 옳지 않다"고 직언했고, 능력 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들을 천부장·백부장 등으로 세워 역할을 분담하라고 조언했습니다(출처: 대한성서공회 성경 출애굽기 18:21). 이 조언이 이스라엘 사법 제도의 출발점이 되었고, 그 제도를 가져온 사람은 이방인 이드로였습니다. 십보라가 만든 관계가 이스라엘 제도 역사에 직접 개입한 셈입니다.
민수기 12장에는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의 '구수 여자'를 비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구수 여자가 십보라를 가리키는지, 아니면 이후 새로 맞은 다른 여인인지는 학계에서도 견해가 갈립니다. 단, 비방의 본질을 단순히 다문화 배척 문제로만 읽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그 사건에서 진짜 문제 삼으신 것은 아내의 출신이 아니라 미리암과 아론의 권위 도전과 영적 질투였다는 점을 함께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곧장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는 그들의 발언을 정면으로 꾸짖으셨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진영 밖에 격리되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을 비방했던 그 누나를 위해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라고 기도했고, 백성은 미리암이 돌아올 때까지 행진을 멈췄습니다.
십보라의 죽음이나 무덤에 대한 기록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모세의 무덤도 알려지지 않았으니 이 부부는 나란히 역사에서 크게 기념되는 자리로 이어지지 않은 셈입니다. 그러나 수백 년 뒤, 역대상 23장과 26장에서 모세의 두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의 이름이 다윗 시대 레위인 명단에 등장합니다. 게르솜의 자손 스브엘은 예루살렘 성전 곳간을 맡는 직책에 올랐습니다. 미디안 여인이 낳은 아들의 피가 하나님의 집 안쪽까지 흘러 들어간 것입니다. 그 명단에 십보라의 이름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들 뒤에 그녀가 있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십보라는 왜 성경에서 이름이 세 번밖에 안 나오나요?
A. 성경이 십보라를 기록한 것은 출애굽기 2장 21절(결혼), 4장 25절(할례), 18장 2절(재회) 세 장면뿐입니다. 기록이 짧다는 것이 삶이 가벼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성경은 그녀의 인생에서 방향이 바뀐 결정적인 순간만을 골라 담았고, 그 세 순간이 이야기의 흐름을 실제로 바꿨습니다.
Q. 할례를 왜 십보라가 직접 행했나요? 모세가 하면 안 됐나요?
A. 성경은 모세가 행하지 못한 이유를 명시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시는 위기 상황에서 빠르게 판단하고 행동한 것이 십보라였습니다. 이방 여인이었던 그녀가 언약의 표징인 할례의 의미를 그 순간 정확히 파악하고 돌칼을 든 것은, 성경 전체에서 여성이 직접 할례를 행한 유일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입니다.
Q. 민수기 12장의 '구수 여자'가 십보라인가요, 다른 사람인가요?
A. 이 부분은 학계에서 두 견해가 팽팽합니다. 하나는 구수(구스, 에티오피아 지역)라는 표현이 미디안 출신 십보라를 비하해 부른 것이라는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십보라 사후 혹은 별도로 맞이한 아프리카 계통의 여인을 가리킨다는 해석입니다. 성경 본문만으로는 확정할 수 없으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비방 사건에서 아내의 출신이 아니라 미리암과 아론의 권위 도전을 문제 삼으셨다는 사실입니다.
Q. 이드로가 모세에게 재판 제도를 조언한 것, 이방인의 말을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요?
A. 이드로는 조언을 마치며 "하나님께서도 내게 명하시면"이라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 안에서 제안한 것이었고, 모세는 그 말을 듣고 그대로 행했습니다. 출신보다 지혜의 내용을 보고 받아들인 모세의 태도가, 이 장면에서 성경이 실제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라고 제는 생각합니다.
결론
십보라 이야기를 처음 제대로 따라가 봤을 때, 제가 가장 오래 멈춰 선 지점은 할례 장면도, 미리암의 비방도 아니었습니다. 게르솜의 자손 스브엘이 예루살렘 성전 곳간을 맡았다는 역대상의 짧은 구절이었습니다. 십보라의 이름은 거기에 없었지만, 그 이름들이 거기 있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미디안 광야에서 두 아들을 데리고 기다린 그 시간이었습니다.
교회에서 평신도로 섬기다 보면 화려한 직분도, 스포트라이트도 없이 공동체 뒤편을 지키는 분들을 만납니다. 제 경험상 그런 분들이 자리를 비웠을 때 공동체가 흔들리는 경우를 여러 번 봤습니다. 십보라처럼 이름 세 번으로 기록된 삶이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는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은, 기록의 앞줄이 아닌 자리에서 묵묵히 하루를 살아내는 이들에게 성경이 건네는 가장 조용한 위로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