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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열심히 섬기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제가 집사 직분을 받고 몇 년이 지났을 때, 문득 이 질문이 무섭게 다가왔습니다. 사사기 12장에 등장하는 사사 압돈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름 뜻 그대로 살았을까요, 아니면 그저 이름만 남겼을까요. 직접 본문을 붙들고 씨름해보니, 그 답이 생각보다 훨씬 불편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 출신 사사, 압돈의 배경
사사기 12장 13절은 짧고 건조하게 시작합니다. "그의 뒤에는 빌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이었더라." 처음 이 구절을 읽었을 때 저는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배경을 파고들수록 이 한 문장이 얼마나 무게 있는 문장인지 서서히 느껴졌습니다.
압돈의 이름 어원은 히브리어 '아바드(abad)'입니다. 여기서 아바드란 '섬기다', '봉사하다', '종이 되다'를 뜻하는 동사로, 압돈이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선언을 담고 있습니다. 아버지 힐렐이 아들에게 이 이름을 붙인 것은 단순한 작명이 아니라, 자기 자식이 사람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종으로 충성되이 살기를 소원했던 흔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제 아이 이름을 지을 때 얼마나 많은 기도와 바람을 담았는지 생각해보면, 힐렐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압돈이 살았던 비라돈은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사사기 12장 15절). 에브라임 지파(Ephraim tribe)란 이스라엘 12지파 중 하나로, 당시 사사 입다와의 내전에서 42,000명 이상이 학살당해 사실상 멸망 위기에 처했던 지파입니다. 쉽게 말해, 압돈은 '패전 지파의 생존자' 중에서 사사로 세워진 인물입니다. 누가 봐도 쓰기 어려운 인물을 하나님이 들어 쓰셨다는 점에서, 압돈에게는 분명히 탁월한 역량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사기 12장 4절을 보면 입다가 길라 사람들을 모아 에브라임과 전쟁을 하고 요단 나루턱에서만 에브라임 사람 42,000명을 죽였다고 기록합니다(출처: 대한성서공회). 이 사건으로부터 대략 20여 년이 지난 뒤, 바로 그 에브라임 지파 출신인 압돈이 사사로 세워졌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때 가장 불리한 조건의 사람을 쓰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 압돈의 이름 어원: 히브리어 '아바드(abad)' — 섬기다, 종이 되다
- 출신 지파: 에브라임(Ephraim) — 입다와의 내전으로 42,000명 전사, 멸망 위기
- 출신지 비라돈: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 (사사기 12장 15절)
- 사사 재임 기간: 8년 (사사기 12장 14절)
일부다처제와 신앙적 삶 사이에서
제가 이 본문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구절은 사사기 12장 14절입니다. "그에게 아들 40과 손자 30이 있어서 어린 나귀 70마리를 탔더라." 아들 40명. 처음 읽었을 때 숫자가 눈에 걸렸습니다. 아들 40명을 낳으려면 한 명의 아내로는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즉 압돈은 일부다처제(polygamy)를 실천한 사사였습니다. 여기서 일부다처제란 한 남성이 동시에 복수의 아내를 두는 혼인 형태로, 당시 가나안 및 주변 이방 민족들 사이에 퍼져 있던 풍습이었습니다.
박가브라 목사의 저서 《영원히 꺼지지 않는 언약의 등불》 287페이지는 이 대목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압돈은 민족의 지도자인 사사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여자를 거느려 자녀를 낳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이것은 압돈의 시대가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신앙적으로는 죄악으로 부패한 시대였음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도 읽힙니다. 압돈을 단순히 타락한 사사로만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가 8년이라는 재임 기간 동안 멸망 위기의 지파를 안정시키고 외적의 침략 없이 평화를 유지한 리더십의 공적 자체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압돈 시대에 이스라엘이 적에게 짓밟혔다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압돈이 완전히 무능한 지도자는 아니었다는 방증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성경이 압돈에 대해 신앙적 치적(faith-based achievement)을 단 한 줄도 기록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신앙적 치적이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백성을 영적으로 이끈 구체적인 행적을 말합니다. 아들 40명, 손자 30명, 나귀 70필. 성경이 압돈에 대해 남긴 것은 오직 이 숫자뿐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적잖이 찔렸습니다. 교회 직분자로서 제가 섬겨온 시간을 돌아봤을 때, 과연 하나님의 일을 한 흔적이 남아 있는지, 아니면 제 가문과 영역의 안위를 챙긴 기록만 남아 있는지 묻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선진들과 비교해도 압돈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습니다(출처: 대한성서공회). 압돈의 시대적 풍요와 평화는 분명 존재했지만, 그것이 영적 성장과 동반되지 않았을 때 후대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를 그의 기록이 조용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외형적 성장과 세습을 축복으로 착각할 때 압돈의 이야기는 날카로운 경고로 다가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사사 압돈은 성경에서 왜 이렇게 짧게 언급되나요?
A. 사사기에서 소사사(minor judge)로 분류되는 압돈은 사사기 12장 13~15절, 단 3절에만 등장합니다. 소사사란 전쟁 영웅 서사보다 통치 기록이 간략히 남겨진 사사를 가리키는 구분입니다. 제가 직접 본문을 들여다보니, 짧은 기록 안에 담긴 함의가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Q. 압돈이 에브라임 지파 출신인 게 왜 의미 있나요?
A. 사사 입다와의 내전에서 에브라임 지파는 42,000명이 학살당해 지파 자체가 멸망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 직후 세대에서 에브라임 출신이 사사로 세워졌다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불리한 조건의 인물을 쓰셨다는 의미입니다. 동시에 그 탁월한 능력이 신앙적 열매로 이어지지 않았을 때 어떻게 기록되는지도 함께 보여줍니다.
Q. 아들 40명, 손자 30명이 나귀를 탔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요?
A. 당시 나귀를 탄다는 것은 부와 권세의 상징이었습니다. 70명의 직계 후손이 나귀를 탔다는 기록은 압돈이 상당한 세속적 부를 축적했고, 이를 자손에게 세습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일보다 가문의 번영에 더 집중했던 삶의 흔적이 성경에 그대로 남아있는 셈입니다.
Q. 평신도로서 압돈의 이야기에서 실제로 뭘 얻을 수 있나요?
A. 제가 직접 겪어보니, 교회 직분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신앙적 안주의 이유가 되기 쉽습니다. 압돈의 이야기는 '역량이 있고 직분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신앙적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탁월한 역량을 하나님 나라의 공익을 위해 어떻게 쓸 것인가, 그 균형을 늘 점검하게 만드는 본문입니다.
결론
사사 압돈을 공부하면서 제가 가장 오래 붙들었던 것은 그의 이름이었습니다. '아바드', 즉 하나님의 종. 그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 힐렐의 소원과, 정작 성경에 아들 40명과 나귀 70필만 남긴 압돈의 삶 사이에 놓인 간격이 너무나 컸습니다. 제 경우엔 집사 직분을 받던 날의 감격과 몇 년 후 제 삶의 실제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비교했을 때 비슷한 간격을 발견했습니다. 그게 솔직히 이 본문을 공부하는 내내 불편했던 이유였습니다.
압돈에 대한 비판에 치중하기보다는, 그가 멸망 위기의 지파를 안정시킨 리더십을 인정하면서도 그 역량이 신앙적 열매로 이어지지 않았을 때 어떤 기록이 남는지를 함께 보는 것이 더 균형 잡힌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속 역량과 축복을 개인의 세습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공익을 위해 선용하는 것, 그것이 압돈의 이름 뜻이 우리에게 여전히 요구하는 숙제입니다. 사사기 12장 본문을 직접 찾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짧은 세 절이지만, 생각보다 오래 머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