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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마티아 (사도 자격, 일상의 사도성, 성경의 침묵)

기도하는예나아빠 2026. 8. 4. 13:00

목차


    예수님의 제자는 열둘이 아니었던 적이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떠난 자리, 그 빈 곳을 채운 인물이 마티아입니다. 사도행전 1장에 단 한 번 이름이 등장하고 이후로는 아무런 기록이 없는 사람. 처음에는 저도 "이렇게 조용한 사람이 왜 사도였을까"라는 의문을 품었는데, 그 침묵 안을 들여다볼수록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사도 자격 — "능력"이 아니라 "함께한 시간"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다락방에서 제시한 사도 자격 요건은 솔직히 제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기적을 행할 수 있는가, 설교를 잘할 수 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알고 있는가 — 이런 것들이 기준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성경이 제시한 기준은 딱 하나였습니다. "요한의 세례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날까지, 우리와 함께 다닌 사람."

    여기서 사도직(使徒職, apostolate)이란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직이란 단순한 직함이 아니라 부활의 주님을 직접 목격한 증인으로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의미합니다. 즉, 사도는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을 증언하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한 시간"이 유일한 자격 기준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제가 이 부분을 읽으며 불편했던 건 따로 있습니다. 마티아와 함께 후보로 올랐던 요셉(바사바, 유스도)도 동일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둘 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과 동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제비뽑기로 마티아가 선택되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냉정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기도를 보면 시각이 달라집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 이미 선택하신 분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시오." 이들은 자신들이 결정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비뽑기(籤, lot)는 구약 시대부터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는 정당한 방법이었고, 잠언 16장 33절은 이를 뒷받침합니다. "제비는 사람이 뽑지만 결정은 여호와께서 하신다."

    사도 자격 논의에서 저는 한 가지 점을 더 생각해봤습니다. 마티아와 요셉 중 어느 쪽이 더 적합하다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판단 자체를 내려놓는 게 더 정직한 태도라고 봅니다. 성경은 두 사람 모두 자격이 있었다고 기록하며, 선택은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인간의 외적 기준으로 우열을 가리려는 시도가 오히려 사도직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습니다.

    • 사도 자격의 핵심: 요한의 세례부터 승천까지 예수님과 동행한 실제 증인
    • 제비뽑기는 운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묻는 구약적 방식(출처: BibleGateway, 잠언 16:33)
    • 마티아의 이름 뜻: 히브리어 'מַתִּתְיָה(Mattithiah)'에서 파생, "하나님의 선물" 또는 "여호와의 선물"을 의미
    • 선택의 주도권은 인간의 판단이 아닌 하나님께 있음을 전제한 결정 방식
    요약: 마티아가 사도가 된 기준은 능력이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한 시간"이었으며, 선택의 주도권은 처음부터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일상의 사도성 — 성경의 침묵이 실패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마티아를 "묵묵한 무명 봉사자"의 대명사로 읽는 시각이 있는데, 저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이 그에 대해 침묵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자세히 보면 야고보도, 안드레도, 빌립도 사도행전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의 구속사적 흐름은 베드로와 예루살렘 중심 사역, 그리고 바울의 이방인 선교라는 두 축으로 전개되었고, 성경 기자는 그 줄기를 따라 기록했습니다. 마티아의 부재가 그의 무능이나 실패를 뜻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초대교회 전승(傳承, patristic tradition)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기록들이 있습니다. 전승이란 성경 정경 밖에서 초대 교부들이 전해온 구전 및 문서 자료를 의미합니다.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나 클레멘트의 기록에 따르면 마티아는 에티오피아 또는 카파도키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으며, 대부분의 전승은 그가 순교로 생을 마감했다고 전합니다(출처: New Advent, 교부 문헌 아카이브). 기록이 없다는 것이 사역이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가 이 지점에서 한국 교회 현실을 떠올리게 된 건 솔직히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유튜브 설교, SNS 간증, AI 기반 목회 콘텐츠가 쏟아지는 환경입니다. 신앙의 성과가 손쉽게 수치화되고 외형적으로 드러납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정작 "일상의 사도성(使徒性, apostolicity)"이 얼마나 자주 외면받는지를 실감합니다. 일상의 사도성이란 화려한 무대가 아닌 각자의 자리에서 부활의 주님을 증언하며 살아내는 태도를 말합니다.

    찬양팀의 무대 뒤에서 의자를 정리하는 봉사자, 텅 빈 기도실을 매주 지키는 성도, 직장 동료에게 말이 아닌 삶의 방식으로 복음을 보여주는 신자들 — 이들은 기록에 남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런 사람들이 교회의 실제 무게를 지탱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티아가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를 짚어두고 싶습니다. 마티아의 이야기를 "음지에서 조용히 있어라"는 메시지로만 읽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가 잊혀진 것이 미덕이 아니라,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끝까지 충성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유명세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말씀대로 살아내는 진정성, 그것이 일상의 사도성입니다.

    요약: 성경의 침묵은 마티아의 실패가 아니며,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은둔이 아닌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내는 "일상의 사도성"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마티아는 성경에 왜 딱 한 번만 나오나요?

    A. 사도행전의 서술이 베드로·바울 중심의 구속사적 흐름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마티아만이 아니라 야고보, 안드레 같은 다른 사도들도 사도행전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습니다. 성경의 침묵을 그의 무능이나 실패로 읽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보다는 기록의 초점 차이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Q. 제비뽑기로 사도를 결정한 게 너무 비과학적이지 않나요?

    A. 현대적 감각으로 보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약 시대의 제비뽑기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정당한 방법이었고, 잠언 16장 33절이 이를 명확히 지지합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선택하신 분을 확인한다는 자세로 임했는데, 그 전제 자체가 제비뽑기의 의미를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 줍니다.

     

    Q. 마티아가 이방인 선교를 했다는 근거가 있나요?

    A. 성경 정경 안에는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 등 초대 교부 문헌에 에티오피아나 카파도키아 사역이 언급되며, 대다수의 전승은 그가 순교했다고 전합니다. 이를 역사적 사실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가 사도직을 끝까지 수행했다는 정황 근거로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Q. 열두 제자의 숫자 "12"에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A.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가 야곱의 열두 아들에서 비롯된 것처럼, 12사도는 새 언약 공동체인 교회의 토대를 상징합니다. 예수님 스스로도 "인자가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 너희도 12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심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다가 떠난 빈자리를 반드시 채워야 했던 것입니다.

     

    결론

    마티아 이야기를 처음 깊이 들여다봤을 때,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자리에 있는가." 주목받는 자리는 아니더라도, 처음 마음 그대로 있는가 하고요. 사도 자격이 능력이 아니라 함께한 시간이었다는 사실은 지금도 제게 꽤 묵직하게 남아 있습니다.

    마티아를 단순히 "이름 없이 섬기는 사람"의 상징으로만 가져오는 해석에는 저도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말씀대로 살아내는 사람"이라는 쪽이 더 정확하다고 봅니다. 유명세가 있든 없든, 기록이 남든 남지 않든, 그것이 핵심은 아닙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내는 것, 그것이 일상의 사도성이라고 제는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TPa5lNPJe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