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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요한이라는 제자를 오랫동안 '사랑의 사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목회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요한의 이야기를 풀어내다 보니 그 출발점이 얼마나 거칠었는지가 오히려 더 강렬하게 와닿더군요. 불벼락을 맞게 해달라고 외쳤던 그 사람이, 십자가 아래 마지막까지 서 있었다는 사실 — 이 간극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우뢰의 아들 — 요한은 원래 어떤 사람이었나
제가 처음 '보아너게(Boanerges)'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이게 별명이라는 사실이 잘 실감되지 않았습니다. 보아너게란 아람어로 '우뢰의 아들'을 의미하는데, 쉽게 말해 성질이 불같고 감정 표현이 폭발적인 사람에게 붙이는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야고보와 요한 형제 둘 모두에게 이 이름을 붙여주셨다는 것이 마가복음 3장 1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출처: 대한성서공회).
실제로 누가복음 9장에서 요한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 일행을 반기지 않는 사마리아 마을 사람들을 향해 요한이 "불을 내려 태워버리면 어떻겠습니까"라고 외쳤습니다. 저도 이 본문을 아이들에게 설명하면서 속으로 꽤 놀랐습니다. 이건 단순한 흥분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반하는 사람을 즉각 심판하고 싶어 하는 다혈질적 기질의 표현이었으니까요.
요한은 세베대의 아들로,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였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던 중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배와 부모를 두고 즉각 따라나섰습니다. 이 즉각적 순종도 어떻게 보면 그의 기질과 맞닿아 있습니다 — 결정이 서면 망설임 없이 행동하는 사람이었던 거죠. 그가 원래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확신하고 따르게 되었다는 사실도 요한복음 1장 35~37절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 이름 '요한(Yohanan)': 히브리어로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라는 뜻
- 별명 '보아너게': 아람어로 '우뢰의 아들' — 예수님이 직접 붙여주신 별명(막 3:17)
- 직업: 갈릴리 해변의 어부, 세베대의 아들
- 출발점: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확신하고 따름
성품 변화 — 무엇이 요한을 바꿨는가
요한의 변화를 놓고 "예수님과의 인격적 교제만으로 충분한 설명이 된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거기서 한 발 더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격적 교제가 변화의 토양이 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13장 34~35절에 기록된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단순한 감정 훈련이 아니라, 십자가를 앞두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남기신 핵심 유언이었습니다. 요한은 그 말씀의 현장에 있었습니다.
제가 목회 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 중에는 요한처럼 감정 표현이 거친 아이들이 꽤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아이들은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오히려 더 강한 경우가 많습니다. 화를 내거나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건 그 반대급부인 경우가 많죠. 요한이 '사랑받은 제자(Beloved Disciple)'로 불리게 된 배경을 생각할 때마다 이 아이들 얼굴이 겹쳐 보입니다. 요한복음 13장 23절에서 요한은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고 기록됩니다 — 사랑받은 제자란, 예수님으로부터 먼저 선제적으로 사랑을 받은 존재였습니다.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것은, 변화가 단번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따른 뒤로도 여전히 다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것을 막으려 했습니다(눅 9:49). 자신의 그룹에 속하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으려는 배타성이 남아 있었던 거죠. 변화는 점진적이었습니다. 저도 이 부분이 오히려 위안이 됩니다. 요한처럼 오랜 동행과 반복된 은혜 속에서 서서히 달라지는 것, 그게 실제 신앙 성장의 모습에 더 가깝다고 느끼거든요.
사랑의 사도 — 감성 체험에 그친 것이 아니다
'사랑의 사도'라는 표현만 강조하다 보면 요한이 마치 따뜻한 감수성의 소유자였던 것처럼만 읽히기 쉽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을 읽어보면, 요한은 감성적인 사람이기 이전에 명확한 신앙 증언자였습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서 그는 이 책을 쓴 목적을 직접 밝힙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이것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신학적 기독론(Christology) — 쉽게 말해 예수님이 누구인가에 대한 명확한 선언 — 을 목적으로 쓴 문서입니다.
요한복음·요한1서·요한2서·요한3서·요한계시록, 이 다섯 권의 성경이 모두 요한과 연관된 저작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출처: 대한성서공회). 이 방대한 분량의 저작을 남긴 사람을 단지 "감성적으로 변화된 사람"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절반밖에 안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요한복음 19장 26~27절에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위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위탁(Entrustment)'이란 단순한 부탁이 아니라,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맡기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어머니를 혈육이 아닌 요한에게 맡기셨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아이들에게 설명할 때마다, 이게 사랑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신뢰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걸 강조하게 됩니다. 사랑과 신뢰, 그리고 부활의 증인으로서의 사명이 요한 안에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요한이 '사랑받은 제자'라는 표현은 어디서 나온 건가요?
A. 요한복음 13장 23절에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자"라는 표현으로 처음 등장합니다. 요한은 자신의 이름을 직접 쓰는 대신 이 표현으로 자신을 가리켰는데, 이름보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로 불리고 싶었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주님과의 관계에서 찾은 표현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겸손이 아닌 신앙 고백에 가깝다고 저는 봅니다.
Q. 보아너게(우뢰의 아들)라는 별명은 나쁜 의미인가요?
A. 부정적인 딱지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꼭 그렇게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직접 붙여주신 이름이라는 점에서, 그의 기질을 있는 그대로 보시고 부르셨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요한의 열정적인 기질이 나중에는 복음 증언의 동력이 되기도 했으니까요.
Q. 요한이 쓴 성경책은 어떤 게 있나요?
A. 요한복음, 요한1서, 요한2서, 요한3서, 요한계시록, 이렇게 다섯 권이 요한 저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학자에 따라 저자 논쟁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전통적으로는 이 다섯 권 모두 요한 계열의 저작으로 분류됩니다. 성경 한 권의 저자가 이렇게 여러 권을 썼다는 점에서 요한은 신약 성경에서 비중이 매우 큰 인물입니다.
Q. 요한과 야고보는 어떤 관계인가요?
A. 친형제입니다. 둘 다 세베대의 아들로,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함께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두 형제 모두에게 '보아너게'라는 별명을 붙여주셨고, 야고보는 열두 제자 중 첫 번째 순교자가 된 반면 요한은 가장 오래 살며 방대한 성경 저작을 남겼습니다.
결론
요한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제가 계속 마음에 걸렸던 건, 그를 너무 '완성된 사람'으로만 소비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점입니다. 불벼락을 원했던 사람이 사랑을 기록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 — 그 변화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출발점의 거침도 함께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그의 변화를 단지 감성적 체험으로만 읽는 것도 절반짜리 이해라고 저는 봅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기 위해 복음서를 썼고, 십자가 아래 끝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2026년 한국 교회가 갈등과 파편화를 넘어서려면, 요한처럼 먼저 사랑받는 경험과 함께, 그 사랑의 근거인 말씀을 명확히 붙드는 결단이 함께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