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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리 마태 (즉각순종, 부르심의 은혜, 공동체적 재연결)

기도하는예나아빠 2026. 7. 30. 22:54

목차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마태가 세관에 앉아 있다가 예수님의 한마디에 모든 걸 내려놓았다는 장면을 수십 번 읽었는데, 어느 날 문득 "이 사람이 정말 아무 준비 없이 그냥 따라간 걸까?" 하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매국노라 손가락질받던 세리 마태의 이야기는, 자격 없는 죄인을 이름 그대로 불러 주시는 은혜가 무엇인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즉각순종 — 정말 단순한 결단이었을까요?

    마태는 본명이 레위였습니다. 레위라는 이름은 구약 제사장 지파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그 무게를 모를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는 세리(稅吏)가 되었습니다. 세리란 로마 제국의 위임을 받아 유대인들에게 세금을 거두는 공무원으로,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민족을 배신한 매국노이자 죄인으로 취급받던 직업입니다. 경제적으로는 안정적이었지만, 사회적으로는 완전히 고립된 삶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성경 본문을 꼼꼼히 살펴봤는데, 마태복음 9장 9절은 정말 담백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 하시니, 마태가 "일어나 따랐다"는 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즉각순종'을 너무 단편적인 결단의 순간으로만 보는 시각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당대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누구나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고, 오랜 사회적 냉대 속에서 오히려 더 예민하게 영적 갈망을 키웠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부르심의 순간은 끝이 아니라, 오랜 내면의 준비가 터져 나온 임계점이었을 겁니다.

    흥미로운 것은 마태(Matthew)라는 이름의 뜻입니다. 히브리어 '마타이(Mattai)'에서 온 이 이름은 '여호와의 선물'을 의미합니다. 세리라는 직업으로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그 이름 안에는 이미 하나님의 계획이 담겨 있었던 셈입니다. 이 이름의 의미를 처음 알았을 때, 저도 오래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 마태의 본명 레위(Levi): 이스라엘 제사장 지파를 상징하는 이름
    • 세리(稅吏): 로마 정부 위임 공무원, 당시 유대 사회에서 배신자·죄인으로 낙인찍힌 직업
    • 마태(Matthew, 마타이): '여호와의 선물'이라는 뜻, 부르심의 정체성을 담은 이름
    요약: 마태의 즉각순종은 단순한 충동이 아니라, 오랜 영적 갈망이 부르심의 순간에 폭발한 결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부르심의 은혜 — 바리새인들은 왜 그 자리에서 따졌을까요?

    마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직후 벌어진 일이 저는 더 인상 깊었습니다. 마태는 자기 집에서 잔치를 열었고, 그 자리에는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함께했습니다(마태복음 9:10). 그런데 그 자리를 지켜보던 바리새인(Pharisee)들이 제자들에게 따졌습니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느냐?"

    바리새인이란 1세기 유대교의 율법 교사 집단으로, 정결법(Purity Law)이라 불리는 엄격한 종교적 규례를 준수하며 죄인이나 부정한 자와의 식사 자체를 금기시했습니다. 여기서 정결법이란, 종교적으로 '거룩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접촉해서는 안 되는 대상과 행위를 세밀하게 규정한 유대교 전통법입니다. 쉽게 말해, "죄인과 같은 밥상에 앉으면 너도 더러워진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이 논리를 정면으로 뒤집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마태복음 9:12). 이어서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선언하십니다. 제가 이 구절을 다시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 예수님이 단순히 바리새인들을 반박하신 게 아니라, 마태를 향한 부르심 자체가 이미 복음의 선언이었다는 점입니다.

    성경 원문 연구의 권위 있는 자료인 출처: Bible Gateway에서 마태복음 9장을 원어 대조로 확인해 보면, '부르러'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 '칼레사이(kalesai)'는 단순한 초대가 아니라 목적을 가진 선포적 소환을 의미합니다. 마태는 무작위로 걸려든 것이 아니라, 이미 목적 안에서 불림받은 것입니다.

    요약: 바리새인의 정결법 논리를 뒤집으신 예수님의 대답은, 마태를 향한 부르심이 곧 복음 선언 그 자체였음을 보여 줍니다.

     

    공동체적 재연결 — 마태의 진짜 유산은 잔치에 있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마태의 이야기를 다룰 때 많은 경우 '개인의 결단'에서 이야기가 끝나는데, 저는 오히려 그 이후가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마태는 제자가 된 직후 자기 집에 잔치를 열었고, 동료 세리들과 죄인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려왔습니다. 혼자 구원받고 조용히 신앙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공동체적 복음 증거(Communal Witness)'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적 복음 증거란, 개인이 복음을 받은 뒤 자신이 속했던 관계망 안으로 다시 들어가 복음을 연결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마태는 세리로 일하며 쌓아 온 인맥과 공간을 그대로 활용해,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이들을 예수님과 연결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2026년 현재 한국 교회가 극심한 세속화와 신뢰 위기를 겪고 있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출처: 한국갤럽의 종교 관련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개신교 인구 비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저는 마태의 잔치가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결단의 순간보다, 그 결단 이후에 내 주변의 소외된 이들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제가 직접 여러 복음서를 대조해 봤는데,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이 인물을 '레위'라는 본명으로 기록합니다. 반면 마태복음은 스스로를 '세리 마태'라고 명시합니다.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드러낸 채,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아(Messiah)임을 증거하는 구약 성취의 복음서를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메시아란 히브리어로 '기름 부음 받은 자', 즉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를 의미합니다. 자신의 과거가 오히려 복음의 진정성을 강화하는 재료가 된 셈입니다.

    요약: 마태의 진짜 유산은 개인 결단이 아니라, 소외된 이들을 예수님께 연결한 잔치, 즉 공동체적 재연결에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마태와 레위는 동일 인물인가요?

    A. 네, 같은 인물입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레위'라는 본명으로, 마태복음은 '마태'라는 이름으로 기록합니다. 마태라는 이름은 '여호와의 선물'을 뜻하며,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은 이후의 정체성을 담은 이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두 이름이 동일 인물을 가리킨다는 것은 초대교회 전통과 성경학계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견해입니다.

     

    Q. 세리는 왜 그렇게 미움을 받았나요?

    A. 세리는 로마 정부의 위임을 받아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세금을 걷는 역할을 했습니다. 문제는 실제 세금보다 더 많이 걷어 차익을 착복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유대인 입장에서는 민족을 배신하고 점령군에게 협력하는 매국노였기 때문에, 당시 유대교 전통에서 세리는 죄인과 동급으로 취급받았습니다.

     

    Q. 마태복음이 다른 복음서와 어떻게 다른가요?

    A.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구약 예언을 성취하신 메시아, 즉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왕으로 집중적으로 소개합니다. 마가복음이 예수님의 행동과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누가복음이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며, 요한복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성을 부각한다면, 마태복음은 유대인 독자를 염두에 두고 구약과의 연결고리를 가장 촘촘하게 엮은 복음서입니다.

     

    Q. 예수님이 세리 마태를 부르신 건 어떤 의미인가요?

    A. 당시 바리새인들의 정결법 기준으로는 세리는 함께해서는 안 되는 죄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제자로 부르신 것은 종교적·사회적 기준이 아닌 은혜의 기준으로 사람을 부르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말씀은 마태 한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격 없다고 느끼는 모든 이들에게 향한 복음의 핵심입니다.

     

    결론

    마태의 이야기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제가 가장 오래 붙들고 있었던 질문은 이겁니다. "과연 나는 부르심 이후에 잔치를 열고 있는가?" 결단의 순간은 강렬하지만, 그 결단이 나 혼자의 신앙 안에서만 머무른다면 마태의 이야기에서 절반도 건지지 못한 것일 수 있습니다.

    마태는 세리였다는 과거를 숨기지 않았고, 그 관계망을 고스란히 복음의 통로로 전환했습니다. 2026년 한국 교회의 현실 속에서 성도들이 세상의 안정을 내려놓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걸 저도 체감합니다. 그럴수록 '여호와의 선물'이라는 이름처럼, 자격이 없어도 불림받은 자로서 주변의 소외된 이들을 향해 잔치를 여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신앙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태복음을 처음부터 한 번 통독해 보시길 권합니다. 마태가 어떤 눈으로 예수님을 기록했는지가 느껴지는 순간, 이 이야기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r5R6NfVsr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