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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브살렐과 오홀리압 (성령 충만, 장인 소명, 평신도 사역)

기도하는예나아빠 2026. 9. 9. 05:20

목차


    교회에서 묵묵히 방송 장비를 만지거나 주차를 안내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 적 있으셨습니까. "이게 정말 신앙 생활이 맞나?" 저도 한동안 그 질문을 안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출애굽기에서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다시 만났을 때, 뭔가 딱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사람'으로 가장 먼저 기록한 인물이 제사장도 선지자도 아닌, 망치와 조각칼을 든 기술자였다는 사실이요.



    성령 충만한 장인, 브살렐과 오홀리압의 소명

    출애굽기 31장 1-11절을 보면, 하나님은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성막(聖幕) 건축의 총감독으로 직접 지명하십니다. 여기서 성막이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이동하는 동안 하나님이 거하시는 이동식 성소를 의미합니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이끌리며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불확실했던 광야에서, 하나님은 금속 세공과 직조(織造) 같은 매우 구체적인 기술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솔직히 의외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성경을 오래 읽어온 분들 중에는 성령 충만을 주로 예언이나 설교, 기도와 연결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성령 충만을 처음으로 명시한 사례가 금속을 두드리고 실을 엮는 노동 현장이었다는 사실은, 제가 직접 본문을 확인해보고서야 실감했습니다.

    브살렐은 유다 지파 출신으로 훌의 손자라고 출애굽기 38장 2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훌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세의 팔을 붙들었던 인물이니, 브살렐이 완전히 무명의 평민은 아니었습니다. 반면 오홀리압은 단 지파 출신으로, 당시 이스라엘 지파 내에서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한 편에 속했습니다. 이 두 사람을 동등한 공동 감독으로 세우셨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선출(選出) 기준이 지파의 귀천이 아니라 각자에게 부어주신 은성(恩性)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은성이란 하나님이 특정 사람에게 부어주신 자연적 재능과 영적 은사가 결합된 능력을 뜻합니다.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주신 것

    출애굽기 31장과 35장을 교차해서 읽어보면, 하나님이 두 사람에게 주신 것이 단순한 기술 숙련도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명시합니다(출처: 대한성서공회).

    브살렐에게는 금속, 보석 세공, 목공에 이르는 공예 기술이, 오홀리압에게는 청색·자색·홍색실과 흰 베실을 엮어 휘장과 제사장 의복을 만드는 직조 기술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주목할 만한 점은 "가르치는 능력"을 함께 주셨다는 기록입니다. 혼자 잘 만드는 것을 넘어, 다른 사람을 훈련시키는 역량까지 성령의 역사로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 지혜(חָכְמָה, 호크마) — 실제 작업을 수행하는 기술적 분별력
    • 총명(תְּבוּנָה, 테부나) — 재료와 구조를 꿰뚫는 이해력
    • 지식(דַּעַת, 다아트) — 하나님이 의도하신 설계를 인식하는 능력
    • 가르치는 능력 — 성막 건축에 동참할 다른 장인들을 세우는 역량

    이 목록을 처음 정리해봤을 때 제가 느낀 것은, 이것이 단순한 기능 목록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이 감정적 고양이나 특별한 체험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손의 기술과 머리의 판단력, 그리고 공동체를 세우는 관계적 능력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이 본문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약: 성경 최초로 '성령 충만'이 기록된 인물은 제사장이나 선지자가 아닌 장인 브살렐과 오홀리압이며, 하나님은 출신 지파의 귀천 없이 각자의 은성을 따라 이들을 동등한 감독으로 세우셨습니다.

     

    평신도 사역으로 읽는 성막 건축의 의미

    한국 교회 현장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강단 위의 목회자와 강단 아래의 평신도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저도 그 선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브살렐과 오홀리압의 이야기를 다시 읽으면서, 그 구분이 성경적 근거 위에 있는 게 맞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성막 건축이라는 과업은 모세가 직접 감독한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39장을 보면 모세는 완성된 성막을 "명령대로 된 것을 보고" 축복했습니다. 실제 작업은 브살렐과 오홀리압, 그리고 그들이 가르친 장인들이 수행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말씀을 선포한 자가 아니라, 손으로 두드리고 실을 엮은 자들의 땀으로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교회에 대입해보면 흥미로운 장면들이 겹쳐집니다. 제 경험상 주일 예배를 실제로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음향 장비를 점검하고, 주차 동선을 안내하고, 새벽부터 식당을 준비하는 평신도들의 노동입니다. 이 노동이 강단의 설교보다 덜 거룩하다고 볼 수 있는 성경적 근거는 저는 찾지 못했습니다.

    문학적 해석과 본문 사이의 선

    다만 한 가지 짚어두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브살렐과 오홀리압의 개인적 고뇌, 즉 "노예 시절의 거친 손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성소를 지을 수 있겠는가"라는 내적 갈등은 출애굽기 본문에 직접 기록된 내용이 아닙니다. 이것은 문학적 상상력으로 구성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문학적 재구성이란, 본문에 없는 감정과 대화를 후대에 서술자가 덧붙이는 해석 방식을 말합니다.

    이런 방식의 서술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청중의 공감을 끌어내는 데 효과적이고, 본문의 핵심 메시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진다면 설교나 묵상의 자료로 충분히 가치 있습니다. 다만 설교를 들을 때 "이건 본문에 있는 내용인가, 아니면 설교자의 해석인가"를 구분하는 습관은 신앙인으로서 건강한 태도라고 저는 봅니다.

    또 한 가지, 브살렐을 단순히 '미천한 노예 출신'으로만 규정하는 시각도 다소 평면적입니다. 앞서 말했듯 그는 훌의 손자이며 유다 지파의 명문가 계열입니다. 성막 건축의 신학적 의미를 "계급 극복"으로만 읽으면, 오히려 본문이 말하려는 더 깊은 주제를 놓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사건에서 보여주신 것은 계급 타파라기보다, 각기 다른 지파와 배경을 가진 인재들을 성령의 지혜 아래 하나의 과업으로 통합하시는 주권적 섭리(攝理)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섭리란,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시는 방식을 의미합니다(참고: 기독교타임즈).

    이 두 가지 의견을 모두 열어두고 본문을 읽었을 때, 저는 결국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브살렐과 오홀리압의 이야기는 "어떤 출신이든 상관없다"는 위로의 메시지도 맞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이 손의 기술을 거룩한 사역의 영역으로 온전히 인정하셨다"는 선언입니다.

    요약: 성막 건축은 평신도 장인들의 손으로 완성된 거룩한 사역이며, 브살렐의 신분적 배경을 감안할 때 이 사건의 핵심은 계급 극복보다 성령의 지혜 아래 다양한 은성을 통합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로 읽는 것이 적절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성경에서 처음으로 성령 충만한 인물로 기록됐다는 게 사실인가요?

    A. 네, 출애굽기 31장 3절이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게 임했다'고 명시한 최초의 구절입니다. 성령 충만이라는 표현이 제사장이나 예언자가 아닌 기술자에게 먼저 적용됐다는 점은 신학적으로 꽤 의미 있는 관찰입니다. 이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저도 다시 한번 본문을 확인했을 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Q. 브살렐이 노예 출신이라는 건 성경에 나오는 내용인가요?

    A.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했으므로 브살렐도 그 상황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만 그를 특별히 '미천한 노예 출신'으로 강조하는 서술은 본문보다 설교나 묵상 콘텐츠에서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출애굽기 38장 22절은 그를 유다 지파 훌의 손자로 명시하고 있어, 단순히 신분이 낮은 인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Q. 오홀리압이 단 지파 출신이라는 게 왜 중요한가요?

    A. 단 지파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한 편이었습니다. 명문 유다 지파의 브살렐과 함께 동등한 감독으로 세워졌다는 점은, 하나님의 선출 기준이 지파의 정치적 위상이 아닌 부어주신 은성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구도가 오늘날 교회 내 다양한 배경의 평신도 사역을 신학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Q. 일상의 직업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사역이 될 수 있나요?

    A. 성막 건축 이야기는 그 가능성을 직접적으로 열어주는 본문입니다. 다만 어떤 직업이든 자동으로 거룩해진다는 식의 해석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기술을 성령의 지혜 아래 사용하겠다는 의식적 헌신이 함께할 때 일상이 사역이 된다고 보는 시각이 더 정확하다고 봅니다. 브살렐과 오홀리압도 기술이 있었지만, 부르심에 응답했을 때 그 기술이 성소의 재료가 됐습니다.

     

    결론

    브살렐과 오홀리압의 이야기를 다시 읽으면서 제가 가장 오래 머문 문장은 "명령대로 된 것을 보고"였습니다. 모세가 완성된 성막 앞에서 한 말입니다. 설계도를 받은 사람은 모세였지만, 그 설계도를 손으로 현실로 만든 것은 장인들이었습니다. 이 분업이 어느 한쪽을 낮추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제가 이 본문에서 가져간 핵심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를 "당신도 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로만 소비하는 것은 아쉬운 독법입니다. 성막 건축에는 브살렐의 기술뿐 아니라, 백성들이 가져온 금붙이와 폐물들, 즉 과거의 상처와 실패의 흔적들이 재료로 쓰였습니다. 하나님은 새것만으로 당신의 집을 짓지 않으셨습니다. 그 점이 저에게는 동기부여보다 더 깊은 위로로 남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VuNMWF_AIw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