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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땅을 먼저 고른 사람이 과연 더 현명한 걸까요? 창세기 13장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솔직히 롯의 선택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요단 들녘은 물도 풍부하고 도시도 가까웠으니까요. 그런데 본문을 두세 번 더 읽고 나서야 이 장면이 단순한 땅 분배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양보가 얼마나 비범한 결단이었는지, 그리고 그 배경에 어떤 신학적 긴장이 숨어 있는지를 제가 정리해봤습니다.

양보라는 선택 — 삼촌이 먼저 물러선 이유
가나안에 정착한 아브라함과 조카 롯은 둘 다 가축과 재산이 크게 불어난 상태였습니다. 소, 양, 낙타, 당나귀에 금과 은까지. 두 집안의 목자들이 같은 풀밭과 우물을 두고 날마다 충돌하면서 갈등이 누적되었고, 아브라함은 결국 롯을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원하는 곳을 먼저 고르거라. 그러면 나는 다른 쪽으로 가겠다."
제가 이 장면을 읽으면서 처음 든 생각은 '왜 삼촌이 먼저 양보하지?'였습니다. 당시 문화에서 장자권(長子權)—가문의 연장자가 중요한 결정에서 우선권을 갖는 관습—은 아브라함 쪽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장자권이란 단순히 나이 우선이 아니라, 가문 전체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권위를 뜻합니다. 그 권리를 조카에게 넘긴 것은 체면을 버린 행동이 아니라,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 기득권을 자발적으로 내려놓은 결단이었습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아브라함의 양보를 단순히 '어른의 관용'으로 읽으면 이 장면이 지나치게 교훈적으로 소비됩니다. 제가 보기에 이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눈앞의 좋은 땅을 포기해도 두렵지 않을 만큼, 이미 다른 기반이 있었던 것입니다.
- 아브라함은 장자권을 가진 연장자임에도 먼저 선택권을 양보했습니다
- 목자들 간 반복된 충돌이 이 결단의 직접적 계기였습니다
- 양보는 굴복이 아니라, 약속에 근거한 자발적 내려놓음이었습니다
선택 기준 — 롯의 눈과 아브라함의 눈
롯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요단 강 유역을 골랐습니다. 창세기 13장 10절은 그 땅을 두고 "여호와의 동산 같고 이집트 땅과 같았다"고 묘사합니다(출처: BibleGateway, 창세기 13장 원문). 풀밭은 넓고, 물은 풍부하며, 바로 옆에는 소돔 성이 있어 필요한 물자를 언제든 구할 수 있는 위치였습니다.
롯의 선택을 단순히 세속적 욕심으로만 읽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게 조금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수자원이 풍부한 요단 들녘을 택한 건 가축의 생존을 책임져야 하는 목축업자로서 가장 실리적이고 자연스러운 판단이었으니까요. 제가 만약 그 자리에 있었다면 저도 같은 방향을 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중요한 단서를 하나 숨겨놓습니다.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라는 시대적 주석입니다. 여기서 이 구절의 신학적 아이러니(irony)—겉으로 이상적으로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심판을 앞두고 있다는 역설—가 드러납니다. 롯의 눈에는 최선이었지만, 본문의 화자는 이미 그 땅의 결말을 알고 있었습니다. 외형적 조건과 영적 실상 사이의 간극이 이 장면 전체에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흥미로운 건 신약의 시각입니다. 베드로후서 2장 7절은 롯을 "음란한 자들의 행실로 말미암아 탄식한 의로운 롯"으로 묘사합니다(출처: BibleGateway, 베드로후서 2:7). 제 경험상 롯을 단순한 탐욕의 인물로 처리하면 이 신약적 평가와 충돌합니다. 롯은 잘못된 환경을 선택했지만, 그 안에서 내내 고통받은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믿음 — 자녀가 한 명도 없는데 약속을 믿었다는 것
롯이 떠난 직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눈을 들어 보이는 모든 땅을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네 자손은 아주 큰 민족이 될 것이다." 창세기 본문에 따르면 이것은 이미 두 번째 반복된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아브라함에게는 자녀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솔직히 멈추게 됩니다. 자녀도 없는데 '큰 민족'을 약속하는 것, 그 약속을 믿는 것.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칭의(稱義, Justification)의 맥락입니다. 여기서 칭의란 행위나 조건이 아닌, 약속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잡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갈라디아서와 로마서가 아브라함의 믿음을 반복해서 인용하는 건 이 이유 때문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묵상하면서 현재 한국 교회 상황과 겹쳐 보이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교단 간, 교인 간 분쟁이 잦아지는 배경에는 자원과 공간을 두고 벌어지는 목자들의 다툼과 닮은 구조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먼저 물러서는 게 손해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어느 쪽이 더 단단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는 이 본문이 이미 보여주고 있습니다.
~라는 의견도 있지만, 저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순전히 영웅적 서사로 소비하는 것에는 조심스럽습니다. 그도 갈등 앞에 먼저 롯을 찾아가 직접 의논했고, 상황을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현실 판단을 대체한 게 아니라, 믿음이 현실 앞에서 구체적인 결정을 이끌었다는 게 제가 이 본문에서 얻은 결론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롯이 소돔 근처를 선택한 게 잘못된 건가요?
A. 롯의 선택 자체가 도덕적으로 잘못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목축업자 입장에서 수자원이 풍부한 요단 들녘은 합리적인 선택이었고, 베드로후서 2장 7절은 롯을 '의로운 롯'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다만 본문은 그 땅이 '심판 전'이었다는 단서를 달아, 외형적 조건만으로 판단한 선택의 한계를 암시합니다. ~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롯을 단순한 악역으로 읽기보다 복잡한 상황 속에서 고통받은 인물로 보는 게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Q. 아브라함이 왜 조카에게 먼저 선택권을 줬나요?
A. 당시 문화적 관습상 연장자인 아브라함이 먼저 선택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먼저 양보한 건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하나는 공동체 평화를 위한 실용적 결단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기에 어느 땅을 선택하느냐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확신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작동했다고 보는 게 제 판단입니다.
Q. 창세기 13장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칭의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A.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13장의 약속 반복은 그 믿음의 과정 중 한 장면입니다. 칭의란 행위가 아닌 약속에 대한 신뢰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잡히는 개념인데, 자녀가 한 명도 없는 상태에서 '큰 민족'의 약속을 받아들인 아브라함의 태도가 그 원형(prototype)입니다.
Q. 두란노 이야기성경은 어린이용 자료인가요, 어른도 봐도 되나요?
A. 두란노 이야기성경은 어린이와 가족을 주 대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 형식의 성경 교육 콘텐츠입니다. 다만 성인이 보더라도 본문의 핵심 줄거리와 인물 흐름을 빠르게 파악하는 데 유용합니다. 저는 묵상 전에 스토리 흐름을 정리할 때 이런 자료를 보조로 활용하는 편입니다.
결론
창세기 13장은 땅을 나누는 이야기지만, 제가 읽은 건 결국 '무엇을 근거로 결정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롯의 선택은 합리적이었고, 아브라함의 양보는 비합리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이 끝날 때 서 있는 두 사람의 위치는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의 약속 앞에 선 사람과, 외형적으로 좋은 환경을 선택한 사람.
제가 이 본문에서 가져온 건 단 하나입니다. 지금 내가 어떤 눈으로 상황을 보고 있는가. 롯의 눈인지, 아브라함의 눈인지. 그 질문이 묵상을 시작하기에 충분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