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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제자가 가장 많은 일을 한 제자일까요? 열두 제자 명단을 처음 꼼꼼히 들여다봤을 때 저는 이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 이른바 '작은 야고보'는 이름 세 글자 외에 성경이 거의 아무것도 전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침묵 속에서, 제가 교회 봉사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어떤 진실이 겹쳐 보였습니다.
신실함 — 기록되지 않은 삶이 증명하는 것
작은 야고보를 처음 진지하게 들여다본 건 12사도 개별 인물을 연속으로 공부하던 중이었습니다. 베드로, 요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처럼 성경 서사를 이끄는 인물들 사이에서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는 단 한 번도 단독 조명을 받지 않습니다. 복음서 네 곳의 제자 명단과, 십자가 처형 현장을 멀리서 지켜본 여인들 곁에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등장한다는 기록이 사실상 전부입니다.
여기서 '사도(Apostle)'라는 개념을 잠시 짚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도란 단순히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가 아니라, 부활의 증인으로서 파송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직접 보고 직접 나간 사람"입니다. 작은 야고보는 이 기준을 분명히 충족합니다. 그는 십자가 현장을 목격했고(출처: Bible Gateway, 마가복음 15:40), 오순절 성령 강림이 있던 마가의 다락방에도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이 두 사건만으로도 그는 부활 증인이자 초대 교회의 기둥 중 하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교회에서 가장 조용한 사람이 가장 오래 버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름이 불리지 않아도 예배 전 의자를 정렬하고, 소그룹 뒤처리를 맡으며, 아이들 교육을 묵묵히 책임지는 성도들 말입니다. 솔직히 이건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대에 서는 사람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막연히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그 성도들이 빠졌을 때 공동체가 얼마나 흔들리는지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눈이 떠졌습니다.
작은 야고보에 대해 "예수님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여기서 한 발 물러서고 싶습니다. 성경적 기록이 부족한 상태에서 인물의 내면을 단정 짓는 것은 자의적 추측으로 흐를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십자가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뿐이고, 그 사실 자체가 이미 충분히 강력한 증언입니다.
- 열두 제자 명단에 이름이 오른 공식 사도(Apostle)로서 부활 증인의 자격을 갖춤
- 십자가 처형 현장을 직접 목격한 몇 안 되는 제자 중 한 명
- 오순절 성령 강림(Acts 1장, 마가의 다락방) 자리에 함께한 것으로 기록됨
- 성령 충만 이후 땅끝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한 증거가 있음
하나님의 주권 — 무명이 선택된 이유
작은 야고보를 공부하면서 가장 눈에 걸린 지점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와 함께 '알페오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공유하는 인물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세리 마태입니다. 마가복음 2장 14절은 "알페오의 아들 레위(마태)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고, 사도행전 1장의 다락방 명단에서도 마태와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가 나란히 묶여 등장합니다. 이 두 사람이 형제였을 가능성은 성경학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되는 견해입니다.
만약 이 형제설이 맞다면 한 가지 흥미로운 구도가 생깁니다. 마태는 마태복음이라는 신약 정경(Canon)을 남겼습니다. 정경이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인한 성경의 범위를 뜻하며, 마태복음은 그 27권 중 하나입니다. 반면 형제 야고보는 기록 하나 남기지 않았습니다. 같은 집안, 같은 부르심, 그런데 전혀 다른 '결과물'. 이 차이가 과연 능력의 차이일까요?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문제로 보입니다. 역할이 달랐을 뿐, 부르심의 무게는 동등했다는 것이죠.
2026년 한국 교회 현실을 보면 이 구도가 더 선명해집니다. 청년층의 신앙 이탈과 대형교회 집중 현상 속에서, 소형 교회들이 관계와 돌봄을 기반으로 새로운 공동체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출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숫자가 작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도, 그 안에서 한 명 한 명이 자기 자리를 지키는 공동체가 오히려 더 건강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봉사해온 소형 공동체에서도 정확히 그걸 확인했습니다.
핵심은 여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야고보를 조명하는 이유가 "이런 훌륭한 사람을 본받자"는 인물 미화에 머문다면, 이야기의 절반을 놓치는 겁니다. 더 중요한 층위는 하나님의 주권(Sovereignty of God), 즉 하나님께서 평범하고 기록조차 희미한 사람을 당신의 도구로 선택하신다는 사실 자체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주권이란, 누가 쓰임받을지를 인간의 능력이나 명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결정한다는 신학적 개념입니다. 작은 야고보의 가치는 그의 훌륭함에 있지 않고, 그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작은 야고보는 왜 '작은'이라고 불리나요?
A. 정확한 이유는 성경에 명시되지 않습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보다 나이가 어렸거나 키가 더 작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데, 이는 두 야고보를 구별하기 위한 표현으로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입니다. 성경학자들 사이에서도 이 별칭의 기원에 대해 단정적 결론은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Q. 작은 야고보와 마태가 형제라는 근거는 어디 있나요?
A. 두 사람 모두 '알페오의 아들'이라는 동일한 수식어로 기록되며(마가복음 2:14, 사도행전 1장 명단), 다락방 명단에서 나란히 묶여 등장합니다. 다만 이는 가능성으로 제시된 것이며 성경이 형제 관계를 직접 확인해주지는 않습니다. 가장 정확한 사실은 현재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Q. 작은 야고보는 어떻게 순교했나요?
A. 성경은 작은 야고보의 순교를 직접 기록하지 않습니다. 초대 교회 전승에서 이집트나 페르시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이는 성경 외 자료에 근거한 것으로 역사적 확실성이 낮습니다. 성경이 침묵하는 부분은 침묵으로 두는 것이 더 정직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Q.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가 작은 야고보인가요?
A. 아닙니다. 야고보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로 보는 것이 학계의 지배적 견해입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열두 제자에 포함되지 않으며, 부활 이후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 활동한 인물입니다. 알페오의 아들 작은 야고보와는 별개의 인물입니다.
결론
작은 야고보를 공부하고 나서 제 머릿속에 남은 건 그의 성품이나 업적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왜 이렇게 기록이 없는 사람을 열두 제자 중 하나로 선택하셨을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제가 내린 잠정적 결론은 이렇습니다. 부르심은 능력이나 명성을 기준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 작은 야고보가 남긴 것은 텍스트도, 기적도 아니라 자리를 지킨 신실함(Faithfulness)이었고,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오늘 교회 안에도 이름이 불리지 않는 '작은 야고보'들이 있습니다. 제가 직접 함께 봉사해온 그분들을 생각하면, 이 인물 연구가 단순한 역사 공부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압니다. 화려한 사역보다 묵묵한 헌신이 공동체를 실제로 지탱한다는 사실, 그 진실을 작은 야고보는 2천 년 전에 이미 몸으로 보여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