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 예배 준비를 하다가 창세기를 다시 펼쳤을 때, 하갈이라는 이름 앞에서 손이 멈췄습니다. 주인공도 아니고, 영웅도 아닌 이집트 여종. 그런데 읽을수록 이 사람의 이야기가 성경 전체에서 유독 묵직하게 느껴졌습니다. 하나님께 직접 이름을 붙여 부른 최초의 인물이 아브라함도, 사라도 아닌 하갈이었다는 사실은, 솔직히 제게도 꽤 예상 밖이었습니다.고대 관습이 만든 비극, 그 구조를 먼저 봐야 합니다하갈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당시 고대 근동(古代 近東) 사회의 관습부터 짚어야 합니다. 고대 근동이란 현재의 이라크, 시리아, 이스라엘 일대를 포함한 문명 발생지로, 지금으로부터 약 3,500~4,000년 전의 법 체계와 생활 방식이 통용되던 세계입니다.1940년대에 발굴된 누지(Nuzi) 석판 문서에는 이런..
교회에서 창세기를 가르치다 보면, 사라 이야기를 단순한 '믿음의 여인' 서사로 정리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주석과 고대 근동 법전 자료를 찾아 읽으면서, 일반적으로 '신앙의 아이콘'으로만 그려지는 사라가 실은 극도로 복잡한 내면을 가진, 매우 인간적인 인물이었다는 걸 새삼 실감했습니다. 불임의 고통, 하갈과의 갈등, 90세의 불신 — 이 모든 굴곡이 있었음에도 사라는 결국 이삭을 품에 안았습니다.불임의 고통과 하갈 갈등 — 사라의 인간적 한계사라(본명 사라이, 히브리어로 '공주')는 아브라함보다 열 살 정도 어렸고, 아버지 쪽 이복 여동생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는 언약을 주셨을 때, 사라 입장에서 이 약속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