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강인한 전사 집단으로 불렸던 지파가 스스로의 죄악으로 인해 남성 600명만 남기고 전멸 직전까지 몰린 사실, 성경을 수십 번 통독한 분들도 사사기 19~21장에 이르면 멈칫하게 됩니다. 저도 처음 이 대목을 읽었을 때 "이게 정말 성경 안에 있는 이야기인가" 싶어 앞뒤를 다시 펼쳐 봤을 정도였습니다. 베냐민 지파의 이야기는 비극으로 시작해 회복으로 끝나지만, 그 과정이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베노니에서 베냐민으로 — 태어날 때부터 달랐던 이름베냐민이라는 이름을 그냥 '야곱의 막내아들' 정도로만 기억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이름 하나에 이 지파 전체의 운명이 압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라헬은 죽어가면서 아이를 '베노니(Ben-Oni)'라 불렀습니다. 여기서..
삼손이 죽을 때 죽인 자가 살았을 때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다(사사기 16:30). 처음 이 구절을 다시 읽었을 때, 저는 묘하게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영웅의 마지막치고는 너무 쓸쓸했고, 회개의 기도치고는 너무 늦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게 전부일까요. 삼손의 이야기는 단순한 비극적 영웅담이 아닙니다. 세속화(世俗化)의 끝에서 주권적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속사(救贖史)가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배경: 다곤 신전에서 벌어진 일블레셋 사람들이 다곤(Dagon)에게 큰 제사를 드리던 날, 삼손은 옥에서 끌려나와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다곤이란 블레셋의 곡물 혹은 물고기 신으로 알려진 고대 가나안 지역의 주요 우상으로,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존재였습니다...
교회 봉사를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솔직히 그때 저는 그냥 자리를 지키는 게 봉사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사기 12장에 두 구절로만 기록된 사사 엘론의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10년을 다스렸지만 성경이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은 한 지도자의 삶이 왜 이렇게 마음에 걸리는지, 그 이유를 천천히 풀어보겠습니다.엘론은 누구였나 — 스불론 지파 사사의 배경사사기(士師記)를 읽다 보면 입다, 기드온 같은 굵직한 이름들에 시선이 먼저 갑니다. 그런데 12장에 이르면 조용하고 짧은 이름 하나가 등장합니다. 바로 스불론 지파 출신의 사사 엘론입니다. 여기서 사사(士師)란 이스라엘이 왕정 체제를 갖추기 이전, 위기 때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임시 지도자를 말합니다. ..
사사기 12장 9절, 단 한 줄의 기록 속에 '며느리'가 아닌 '딸'이라는 단어가 숨어 있습니다. 한글 번역본에서는 그냥 지나치기 쉬운 이 차이가, 히브리어 원문을 들여다보는 순간 완전히 다른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저도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 잠시 멈춰 앉아 다시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번영이라는 이름, 그 그늘 속의 사사 시대사사 입산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이브찬(Ibtsan)'이라 읽히며, '훌륭함' 또는 '번영'을 뜻합니다. 이름만 놓고 보면 그야말로 복 받은 사람입니다. 아들 30명, 딸 30명. 당시 고대 근동 사회에서 자녀의 수는 가문의 세력과 직결되었으니, 그의 이름값은 충분히 채워진 셈입니다.그런데 저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이름이 '번영'인 사람이 살았던 시대는 과..
18년. 이스라엘이 암몬과 블레셋의 압제 아래 신음한 시간입니다. 저는 이 숫자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무감각했습니다. 그런데 묵상을 이어가다 보니, 18년이라는 세월 끝에 등장한 입다의 서원(誓願)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기도했는데 왜 일이 꼬이는지 고민하는 분이라면, 입다의 이야기가 그 답의 실마리를 줄 수 있습니다.버림받은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때 — 배경과 맥락사사기 11장에 기록된 입다는 기생의 아들이자 서자(庶子)였습니다. 서자란 정처 소생이 아닌 자녀로,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재산 상속권과 공동체 소속감 모두를 박탈당한 존재였습니다. 형제들에게 쫓겨난 입다는 돕 지역으로 유랑하며 역시 갈 곳 없는 무리를 모아 지냈습니다. 제가 이 대목을 읽으며 가장 ..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특별한 체험이 없으면 제 믿음이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사사기 10장에서 돌라라는 이름을 다시 마주쳤을 때, 그 짧디짧은 기록이 오히려 제 가슴을 세게 두드렸습니다. 화려한 기적도, 군사적 영웅담도 없는 이 인물이 왜 이토록 오래 기억에 남는지, 그 이야기를 꺼내보겠습니다.소사사(小士師)란 무엇인가 — 성경이 숨겨둔 사역의 형태사사기를 읽다 보면 기드온이나 삼손처럼 극적인 장면이 연달아 나오는데, 그 사이에 이름만 몇 줄로 끝나는 인물들이 조용히 끼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그냥 넘겼습니다. "어, 이 사람은 아무것도 안 했네" 하고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성경 신학에서는 사사를 대사사(大士師)와 소사사(小士師)로 분류합니다. 대사사란 카리스마적 군사 지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