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장 22절. 다락방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자리, 유다라는 이름을 가진 제자가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서는 그를 굳이 '가롯 아닌 유다'라고 불렀습니다. 가룟 유다라는 배신자와 구분하기 위해서였죠. 처음 이 구절을 묵상했을 때, 저는 이 이름 하나에서 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이름만으로 오해받고, 이름만으로 가려지는 삶. 그게 꼭 2026년 한국 교회 안에 앉아 있는 수많은 성도들의 이야기 같았거든요.배신자의 그늘 속에서 손을 든 제자, 다대오다대오(Thaddaeus)는 신약성경에서 세 가지 이름으로 불립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다대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로 기록됩니다. 여기서 복음서마다 이름이 다른 이유는 단순한 오류가 아닙니다. 마태·마가는 가..
자신을 배신할 사람을 알면서도 끝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더 초즌 시즌 5》 8화 '다락방 2부'를 처음 보던 날 밤, 저는 이 질문 앞에서 한참 멈춰 있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원이 아닌 아버지의 원대로"를 세 번씩 반복하며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단순한 종교 드라마의 감동을 넘어 지금 제가 살고 있는 2026년의 현실을 정면으로 건드렸습니다.겟세마네 기도 — 이 장면이 특별한 이유드라마를 보면서 솔직히 예상 밖이었던 건, 예수님이 기도하는 장면이 이렇게까지 길고 생생하게 다뤄진다는 점이었습니다. 화면 속 예수님은 "아버지, 제발. 다른 길은 없을까요?"라고 울부짖습니다. 이걸 보며 저는 처음으로 이 기도가 얼마나 인간적인 고통이었는지를 피부로 느꼈습니다.성경 신학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