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처음 창세기 12장을 읽었을 때 저는 이 장면이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다"는 히브리서 11장 8절의 표현이 너무 막연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아브라함의 여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다 보니, 이 사람이 얼마나 많은 실패와 두려움 속에서도 한 방향을 잃지 않았는지가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 세 종교가 모두 아버지라 부르는 인물, 아브라함.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제가 직접 정리해봤습니다.하나님의 부르심 — 침묵을 가른 음성갈대아 우르(Ur of the Chaldeans)는 기원전 2000년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손꼽히는 번성한 도시였습니다. 달의 신 난나를 섬기는 신전이 도시 한복판에 서 있었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대대로 제사를 드리며 살아왔습니다...
창세기 어디에도 '사과'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라고만 적혀 있을 뿐입니다. 제가 이 사실을 처음 제대로 확인했을 때, 오랫동안 아무 의심 없이 믿어온 이야기가 사실은 본문 밖에서 덧붙여진 이미지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와라는 인물을 이야기할 때, 저는 이 출발점부터 다시 짚어보는 편이 맞다고 생각합니다.창세기 팩트: 우리가 알던 하와 이야기의 실제창세기 2~3장에 기록된 하와 이야기를 본문 그대로 따라가면, 생각보다 많은 세부사항이 우리가 익히 알던 것과 다릅니다. 우선 창세기 2장 15절을 보면 하느님께서 사람을 에덴동산에 데려다 놓으시면서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즉 원죄(原罪, original sin) —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는 최초의 불순종 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