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을 혼자 다 짊어지려다 어느 순간 완전히 탈진한 적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 완벽주의 성향 탓에 팀원에게 일을 맡기지 못하고 혼자 끌어안았다가 결국 몸도 마음도 바닥을 쳤습니다. 그때 사사기 3장 31절, 단 한 절짜리 인물 삼갈을 다시 읽으며 무언가가 달라 보였습니다. 소 모는 막대기 하나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물리친 이 이름 없는 구원자가, 오히려 저에게 리더십의 본질을 가르쳐줬습니다.소사사 삼갈, 왜 단 한 절로 기록됐을까사사기에는 크게 두 부류의 사사가 등장합니다. 기드온, 삼손, 드보라처럼 여러 장에 걸쳐 상세히 기록된 메이저 사사(Major Judge)가 6명, 그리고 아주 짧게 언급되는 마이너 사사(Minor Judge)가 6명입니다. 여기서 마이너 사사란 이스라엘을 구원한 공로는 분..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샬롬'이라는 단어를 그냥 인사말 정도로 흘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사기 초반 옷니엘의 이야기를 깊이 들여다보고 나서야, 이 단어가 얼마나 무거운 신학적 무게를 담고 있는지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사사기 1장과 3장에 기록된 옷니엘의 승리와 40년의 평화는 단순한 군사적 성취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옷니엘이 드빌을 점령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여호수아가 죽고 난 뒤 이스라엘은 지도자 공백이라는 심각한 위기에 처했습니다. 아직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 족속들이 남아 있었고, 그들은 이 틈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누가 먼저 올라가야 하는지조차 몰라 여호와께 물어야 했습니다. 제가 이 장면을 처음 읽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시몬을 그냥 '열두 제자 명단에 이름만 올라있는 사람' 정도로 흘려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직함 하나를 제대로 들여다본 순간, 이 사람의 이야기가 2026년 한국 교회의 현실과 이렇게까지 겹쳐 보일 줄은 몰랐습니다. 로마에 맞서 목숨을 걸었던 독립투사가 어떻게 로마 앞잡이와 한 식탁에 앉게 됐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오늘날 교회 안에서 서로 등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선명하게 겹쳐 보입니다.열심당원 시몬: 성경이 침묵하는 이유누가복음 6장 15절은 시몬을 가리켜 '셀롯이라는 시몬'이라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셀롯(Zealot), 즉 열심당(熱心黨)이란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로마 제국의 지배에 무력으로 저항하던 유대인 민족주의 무장 집단을 가리킵니다. 우리 역사로 치면 일제강점..
도마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솔직히 '아, 믿음 없는 제자'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을 찬찬히 읽어보니 전혀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가 의심한 게 아니라, 확신을 향해 끝까지 버텼던 겁니다. 오늘은 그 오해를 함께 풀어보겠습니다.믿음이 약해서가 아니라, 충성심이 너무 강해서도마가 처음 본문에 등장하는 장면이 저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예수님은 유대 땅으로 다시 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하나같이 말렸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돌로 쳐 죽이려 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그때 도마가 한 말이 이겁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제가 처음 이 구절을 읽었을 때, 순간 멈췄습니다. 이 사람이 의심 많은 제자라고요? 죽음도 불사하겠..
꼭 앞에 서야만 좋은 신앙인일까요? 저는 안드레를 공부하면서 이 질문을 계속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가장 먼저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었지만, 성경 어디에도 그가 주목받는 장면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오히려 그 조용한 자리에서 더 깊은 울림이 왔습니다.첫 번째 제자, 그런데 왜 우리는 그를 잘 모를까성경에서 안드레는 명확하게 '프로토클레토스(Protokletos)'로 불립니다. 여기서 프로토클레토스란 '가장 먼저 부르심을 받은 자'를 뜻하는 그리스어 표현으로, 동방 정교회 전통에서 안드레를 특별히 높이는 근거가 됩니다. 그는 원래 세례 요한의 제자였는데,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즉시 예수님을 따라갑니다(출처:..
더 초즌 시즌 5, 5화에서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이 중 한 명이 나를 배신할 것이다"라고 선언합니다. 제자들은 곧장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예수님이 아니라 제 자신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정치 이야기를 나누다가 상대방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저 사람은 틀렸다'고 단정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올라왔기 때문입니다.배신 예고 앞에서 흔들린 제자들, 그리고 저일반적으로 최후의 만찬 장면은 숙연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묘사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에피소드를 직접 보니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이 배신 예고를 하자마자 제자들은 "혹시 저입니까?"라고 묻기는커녕 "저 사람 아니야? 도마 아닐까?" 하며 서로를 향해 손가락을 돌렸습니다. 가룟 유다가 빠져나간 것도 눈치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