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묵묵히 방송 장비를 만지거나 주차를 안내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 적 있으셨습니까. "이게 정말 신앙 생활이 맞나?" 저도 한동안 그 질문을 안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출애굽기에서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다시 만났을 때, 뭔가 딱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사람'으로 가장 먼저 기록한 인물이 제사장도 선지자도 아닌, 망치와 조각칼을 든 기술자였다는 사실이요.성령 충만한 장인, 브살렐과 오홀리압의 소명출애굽기 31장 1-11절을 보면, 하나님은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성막(聖幕) 건축의 총감독으로 직접 지명하십니다. 여기서 성막이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이동하는 동안 하나님이 거하시는 이동식 성소를 의미합니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이끌리며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불확실했던..
교회를 꽤 오래 다녔는데도 모세의 아들 이름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출애굽의 영웅 모세, 홍해를 가른 기적, 시내산의 율법까지는 줄줄 읊으면서도 정작 그의 두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역대상 23장을 읽다가 문득 이들의 이름과 마주쳤고, 그때부터 성경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광야 훈련과 두 아들의 이름에 담긴 고백모세는 이집트 왕궁에서 왕자로 자랐습니다. 그런 사람이 동족을 죽이고 하루아침에 사막으로 도망쳐 목동이 됩니다. 그 광야 생활이 무려 40년입니다. 처음 이 대목을 읽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실 사람을 왜 이렇게 오래 방치하시나 싶었거든요.그런데 바로 그 광야에서 모세는 두 아들..
교회 안에서 열심히 섬기면서도 뭔가 영적으로 막혀 있다는 느낌, 받아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여호수아서 7장 아간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며 그 답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여리고성 대승 직후 작은 성 하나에 무너진 이스라엘. 원인은 외부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 숨겨둔 탐심이었습니다. 개인의 은밀한 불순종이 어떻게 공동체 전체의 영적 패배로 이어지는지, 아간 사건이 지금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탐심의 죄 — 천막 아래 숨겨둔 것의 무게여리고성 전투 승리 직후 이스라엘 진영은 축제 분위기였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이 장면을 묵상할 때마다 아간이 서 있던 자리가 눈에 밟힙니다. 다들 기뻐하는 그 순간, 그는 혼자 천막 안에 무언가를 꾹꾹 눌러 묻고 있었을 테니까요.아간은 유다 지파 갈미의 아들로, 여호수아서 7장에는..
솔직히 처음엔 라합이 그냥 조연 정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정탐꾼을 숨겨준 여관 주인 정도로만 기억하고 넘겼죠. 그런데 마태복음 1장 족보를 펼쳤다가 그 이름을 다시 마주쳤을 때, 저는 제가 얼마나 이 인물을 얕게 봤는지 깨달았습니다. 여리고 성벽 위에 살던 이방 여인 한 명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직계 조상이 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한 번 제대로 풀어보겠습니다.정탐꾼을 맞이한 밤 — 단순한 호의가 아니었다여호수아가 두 명의 정탐꾼을 여리고 성으로 보낸 건 전략적 판단이었습니다. 가나안 입성의 관문인 여리고는 당시 가장 견고한 요새 도시 중 하나였고, 무작정 공격하기 전에 성 내부 사정을 파악하는 것이 필수였죠. 여기서 '정탐꾼(spy)'이란 단순한 척후병이 아니라, 적진의 군사·지리·심리 정보를 수집하는..
나이가 들수록 도전이 겁난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 저는 마흔을 넘기면서 '이제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이 자꾸 고개를 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85세에 거인들의 산지를 달라고 요청한 갈렙의 이야기를 다시 들여다보고 나서, 그 생각이 얼마나 안이한 타협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이방인 출신의 외지인이 유다 지파 대표까지 오른 갈렙의 삶은, 나이와 배경이라는 핑계 뒤에 숨고 싶은 이들에게 꽤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이방인 출신, 그래도 유다 지파의 대표가 된 사람갈렙의 배경을 처음 제대로 확인했을 때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성경 본문을 찬찬히 읽다 보면 그가 '그니스 사람'(Kenizzite)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이 나옵니다. 그니스 족속은 창세기 15장 19절에 언급되는 가나안 원주민 계열로,..
솔직히 처음 여호수아서를 읽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을 전멸하라고 명하셨을까?"였습니다. 단순한 정복 서사로 넘기기엔 너무 무거운 질문이 책 전체에 걸려 있었고, 제가 직접 본문을 파고들수록 여호수아서가 단순한 전쟁 기록이 아니라 언약(Covenant)의 성취 서사임을 깨달았습니다. 모세에서 이어진 약속이 어떻게 완결되는지, 그 흐름이 지금 한국 교회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다시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언약 계승 — 모세에서 여호수아로, 무엇이 이어졌는가여호수아라는 이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선언입니다. 본명은 '호세아(Hoshea)'였는데, 이를 민수기 13장 16절에서 모세가 '여호수아(Yehoshua)'로 개명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여호수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