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시몬을 그냥 '열두 제자 명단에 이름만 올라있는 사람' 정도로 흘려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직함 하나를 제대로 들여다본 순간, 이 사람의 이야기가 2026년 한국 교회의 현실과 이렇게까지 겹쳐 보일 줄은 몰랐습니다. 로마에 맞서 목숨을 걸었던 독립투사가 어떻게 로마 앞잡이와 한 식탁에 앉게 됐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오늘날 교회 안에서 서로 등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선명하게 겹쳐 보입니다.열심당원 시몬: 성경이 침묵하는 이유누가복음 6장 15절은 시몬을 가리켜 '셀롯이라는 시몬'이라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셀롯(Zealot), 즉 열심당(熱心黨)이란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로마 제국의 지배에 무력으로 저항하던 유대인 민족주의 무장 집단을 가리킵니다. 우리 역사로 치면 일제강점..
요한복음 14장 22절. 다락방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자리, 유다라는 이름을 가진 제자가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서는 그를 굳이 '가롯 아닌 유다'라고 불렀습니다. 가룟 유다라는 배신자와 구분하기 위해서였죠. 처음 이 구절을 묵상했을 때, 저는 이 이름 하나에서 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이름만으로 오해받고, 이름만으로 가려지는 삶. 그게 꼭 2026년 한국 교회 안에 앉아 있는 수많은 성도들의 이야기 같았거든요.배신자의 그늘 속에서 손을 든 제자, 다대오다대오(Thaddaeus)는 신약성경에서 세 가지 이름으로 불립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다대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로 기록됩니다. 여기서 복음서마다 이름이 다른 이유는 단순한 오류가 아닙니다. 마태·마가는 가..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제자가 가장 많은 일을 한 제자일까요? 열두 제자 명단을 처음 꼼꼼히 들여다봤을 때 저는 이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 이른바 '작은 야고보'는 이름 세 글자 외에 성경이 거의 아무것도 전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침묵 속에서, 제가 교회 봉사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어떤 진실이 겹쳐 보였습니다.신실함 — 기록되지 않은 삶이 증명하는 것작은 야고보를 처음 진지하게 들여다본 건 12사도 개별 인물을 연속으로 공부하던 중이었습니다. 베드로, 요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처럼 성경 서사를 이끄는 인물들 사이에서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는 단 한 번도 단독 조명을 받지 않습니다. 복음서 네 곳의 제자 명단과, 십자가 처형 현장을 멀리서 지켜본..
도마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솔직히 '아, 믿음 없는 제자'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을 찬찬히 읽어보니 전혀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가 의심한 게 아니라, 확신을 향해 끝까지 버텼던 겁니다. 오늘은 그 오해를 함께 풀어보겠습니다.믿음이 약해서가 아니라, 충성심이 너무 강해서도마가 처음 본문에 등장하는 장면이 저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예수님은 유대 땅으로 다시 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하나같이 말렸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돌로 쳐 죽이려 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그때 도마가 한 말이 이겁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제가 처음 이 구절을 읽었을 때, 순간 멈췄습니다. 이 사람이 의심 많은 제자라고요? 죽음도 불사하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아이들 성경 공부 자료를 준비하다가 나다나엘 이야기를 다시 들여다봤는데, 제가 수십 년 교회를 다니면서도 이 제자를 이렇게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더라고요. 빌립의 친구,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기도하던 사람. 그 짧은 장면 안에 신앙의 본질이 다 들어있었습니다.나다나엘은 누구인가 — 친구전도로 만난 제자제가 직접 자료를 찾아보니, 나다나엘은 복음서마다 이름이 다르게 등장합니다. 마태복음·마가복음·누가복음에서는 '바돌로매(Bartholomew)'로 불리는데, 이 이름은 아람어로 '돌로매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바돌로매란 히브리식 성(姓) 표기 방식으로, 아버지 이름 앞에 '바(bar, ~의 아들)'를 붙이는 관습에서 비롯됩니다. 반면 요한복음에서는 '나다나엘(Natha..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마태가 세관에 앉아 있다가 예수님의 한마디에 모든 걸 내려놓았다는 장면을 수십 번 읽었는데, 어느 날 문득 "이 사람이 정말 아무 준비 없이 그냥 따라간 걸까?" 하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매국노라 손가락질받던 세리 마태의 이야기는, 자격 없는 죄인을 이름 그대로 불러 주시는 은혜가 무엇인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즉각순종 — 정말 단순한 결단이었을까요?마태는 본명이 레위였습니다. 레위라는 이름은 구약 제사장 지파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그 무게를 모를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는 세리(稅吏)가 되었습니다. 세리란 로마 제국의 위임을 받아 유대인들에게 세금을 거두는 공무원으로,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민족을 배신한 매국노..